[금강산2]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시에,
금강산의 참된 면목을 알려거든 석양 무렵에 개성루에 올라와 보라.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欲識金剛眞面目 (욕식금강진면목) 夕陽須上 惺樓 (석양수상게성루)
개성루 위에서는 금강 1만 2천 봉 중에서 47개의 산봉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특색 이었다. 김삿갓은 개성루에 올라서서 사방을 두루 살펴보았다. 과연 남쪽으로 보이는 것은 능허봉(凌虛峰)과 영랑봉(永郞峰) 등이요, 동쪽으로 보이는 것은 일출봉(日出峰)과 월출봉(月出峰) 등이요, 북쪽으로 보이는 것은 백옥봉(白玉峰)과 옥선봉(玉仙峰) 등등이여서 그야말로 장관 그것 이였다. 처음에는 높다란 산봉우리 몇 개만 인 줄 알았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높은 봉우리들 사이사이로 낮은 산봉우리들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구름이 흘러감에 따라 산봉우리들은 자꾸만 생겨났다 , 없어졌다 하므로, 김삿갓은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한 수 읊었다.
하나 둘 셋 네 봉우리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봉우리 삽시간에 천만 봉이 새로 생겨나 하늘 아래 모두 산봉우리뿐이로다.
一峰二峰三四峰 (일봉이봉삼사봉) 五峰六峰七八峰 (오봉육봉칠팔봉) 須 更作千萬峰 (수수갱작천만봉) 九萬長天都是峰 (구만장천도시봉)
태산이 가려 북쪽은 하늘이 없고 눈앞은 바다여서 땅은 동쪽 끝이네 다리 아래 길은 사방으로 통해 있고 1만 2천 봉이 지팡이 끝에 매달렸네.
泰山在後天無北 (태산재후천무북) 大海當前地盡東 (대해당전지진동) 橋下東西南北路 (교하동서남북로) 杖頭一萬二千峰 (장두일만이천봉)
(금강산 귀면봉)
그나 그뿐인가. 울울창창한 송림 사이에서는 학의 무리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눈앞의 풍경이 너무도 황홀하여 잠시 무아경에 잠겨 있는데, 홀연 어느 암자에 서 한낮의 종을 요란스럽게 쳐 갈겨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삿갓은 눈을 활발히 뜨며, 즉흥시 한 수를 또 읊었다.
푸른 산길 더듬어 구름 속에 들어오니 다락이 좋아 시인의 발길을 멈추네 용의 조화인가 폭포소리 요란한데 칼날 같은 산들이 하늘에 꽂혔구나.
綠靑碧路入雲中 (록청벽로입운중) 樓使能詩客住 (루사능시객주공) 龍造化含飛雲瀑 (룡조화함비운폭) 劒精神削揷天峰 (검정신삭삽천봉)
(금강산도 무명)
날아가는 저 학들은 몇천 년 되었으며 높이 솟은 청송들은 몇백 자나 되는고 졸고 있던 이 내 심정 스님이 알 길 없어 한낮에 종을 쳐서 사람을 놀라키네.
仙禽白幾千年鶴 (선금백기천년학) 澗樹靑三百丈松 (간수청삼백장송) 僧不知吾春睡惱 (승부지오춘수뇌) 忽無心打日邊鐘 (홀무심타일변종)
김삿갓의 시에 상황 설명이 없다면 그야말로 재미없는 시 일 것도 같다. 이 시를 읽고 있자니 어릴 적 불렸던 동요가 생각이 난다.
금강산 찾아 가자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김삿갓의 시를 읽기 전까지 이 노래는 단순히 동요의 가사였을 뿐이었는데 비록 가보지는 못했어도 지금은 이 가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이토록 짧게 금강산을 나타낼 수 있다니. 내가 금강산 개성루의 서 있다면 과연 어떤 시가 흘러나올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