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가련의 사랑]
김삿갓에게서도 어찌 사랑을 뺄 수 있으랴. 이때쯤의 김삿갓은 발없는 말처럼 빠르게 소문이 퍼져서 알게 모르게 유명인이 되어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일이라. 함흥에서의 일이다. 거기에는 김삿갓을 은근히 홀로 사모하는 가련이라는 기생이 있었고 김삿갓은 어느 산골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 집 할머니 부탁이 함흥에 가면 자기 딸이 가련 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을 하고 있으니 가게 되면 꼭 한 번 만나 달라는 부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함흥에서 김삿갓이 가련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가련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가련 의 집으로 간 김삿갓은 이윽고 가련이 시를 사랑하는 마음씨 아름다운 여인임을 알게 되고 그날 저녁 술 한잔을 따르며 가련이 김삿갓에게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 사이는 십 년을 두고 사귀어도 정이 전연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 만나도 백년지기처럼 느껴지는 분도 있는가 보옵니다.]
무슨 뜻인지 어찌 모르겠는가. 그날 저녁 정을 깊이 나눈 김삿갓과 가련은 더욱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삿갓은 가련과 함께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며 행복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6개월 정도 흐르고 갈수록 가련에게 정이 깊어 가는 삿갓 이였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병연아! 너는 정신을 차려 너 자신의 과거를 반성해 보아라. 너는 조상이 저지른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 처자식까지 버리고 집을 나온 몸이 아니었더냐. 그러한 네가 이제 와서 기녀의 품안에서 방탕을 일삼고 있다면, 너는 한낱 무뢰한이 아니고 뭐겠는가.]
이런 죄책감에 떠날 결심을 하는 김삿갓. 그러나 어이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가련에게 떠남을 알려주고 가련도 처음부터 영원히 묶어 놓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문간에 기대서서 눈물을 씹어 삼키며 전송을 하고 있노라니까, 김삿갓도 차마 발길을 돌리기가 괴로운지 가련을 그윽이 바라보다가, 즉석에서 결별시 한 수를 들려주는 주었다.
가련의 문전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가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마라 가련을 잊지 않았다가 가련에게 다시 오리.
可憐門前別可憐 (가련문전별가련) 可憐行客尤可憐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가련막석가련거)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불망귀가련)
이런 김삿갓을 바람둥이라고 욕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좋지도 않다. 집에서 그만을 기다리는 아내가 있고 그 아내 입장이 저절로 생각케 되니 지금 나는 빨간 보리밥을 먹고 입맛이 쓴 삿갓과 같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쓴 것은 어쩌란 말인가. 입맛이 쓰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신윤복의 미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