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詩

[철쭉과 요강]

浮石 2004. 12. 16. 11:21

[철쭉과 요강]

 

김삿갓이 꽃을 구경하며 정신없이 산을 올라오고 있노라니까, 저 멀리 벼랑 위에 피어 있는 한송이 철쭉꽃이 유난히 탐스러워 보였다.
그 꽃을 멀리서 그윽히 바라보다가, 문득 삼국유사에 나오는 <수로부인> 의 설화가 연상되었다.

그 옛낫 신라 성덕왕(聖德王)때의 일이다.
순정공(純貞公)은 부인과 함께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노라니까, 어느 벼랑 위에 철쭉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수로 부인은 그 꽃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벼랑 위에 있는 저 꽃을
누가 나에게 꺾어다 줄 수 없겠느냐]


하고 말하였으나 아무리 상전마마의 분부이기로, 천인 절벽 위에 피어 있는 그 꽃을 무슨 재주로 꺾어 올 수 있을 것인가, 종자(從者)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얼굴만 살피고 보고 있는데, 때마침 암소를 타고 그 옆을 지나가던 어떤 촌로(村老)가 수로 부인의 말을 듣고,

[자줏빛 바위 위에 피어 있는 저 꽃,
부끄러이 여기지 않으시려거든
내가 저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하는 <헌화가(獻花歌)>를 부르며
그 촌로는 벼랑 위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수로 부인에게 꺾어다 바쳤다는 것이다.
그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거룩한 사랑의 설화 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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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김삿갓에게는 꽃을 꺾어다 바칠 여인이 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꽃이 하도 탐스러워 그냥 내버려두기는 너무도 아쉬웠다.
그리하여 벼랑 끝까지 걸어 나와, 꽃을 꺾으려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다가, 아차 하는 순간 벼랑 아래로 곤드라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있는 김삿갓을 지나가던 나뭇꾼이 발견하여 목숨을 건졌으나 다리가 부러져 꼼짝 못하게 된 삿갓은 천석사(泉石寺)에 머무르게 된다.
방안에서 꼼짝을 못하니,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방에 앉아서 오줌을 눌 수 있는 요강이라는 것이 고맙기 짝없는 물건의 하나였다.
하도 고마운 생각에서 어느 날은 요강을 손에 들고 요모조모로 바라보다가, 마침내 <요강에 대하여> 하는 다음과 같은 익살맞은 시를 한편 지어 보았다.


네 덕에 한밤중에 드나들지 않게 되고
내 옆을 지키면서 나와 함께 있어 주네
주정꾼은 너를 끌어당겨 무릎을 꿇고
아가씨는 타고 앉아 옷을 벌리노라.

賴渠深夜不煩扉 (뇌거심야불번비)
令作團隣臥處圍 (영작단린와처위)
醉客持來端膝  (취객지래단슬궤)
態娥挾坐惜衣收 (태아협좌석의수)

  단단하게 생긴 모습 구리가 분명하여 
  오줌 눌 때 그 소리는 폭포소리 같도다 
  비바람 부는 밤엔 그 공로 대단하여 
  느긋한 성품 길러 살을 찌게 하노나.

 堅剛做體銅山局 (견강주체동산국) 
 灑落傳聲練瀑飛 (쇄낙전성연폭비) 
 最是功多風雨曉 (최시공다퐁우효) 
 偸閑養性使人肥 (투한양성사인비)
옛날 우리 할머니 집에 가면 요강이 있고 할머니도 굉장히 요긴하게 쓰셨다.
그리고 그 요긴함은 할머니 집에 가끔 가는 나에게도 해당된다.
겨울 그 깊은 밤에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은 나에게는 놀이동산의 귀신의 집과도 같다.
유난히 겁이 많은 나에게 요강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다시는 사용해 볼 수 없는 슬프기도 한 요강. 할머니가 오늘 따라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