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의 죽음]
김삿갓은 언덕길을 혼자 걸어 가고 있었다. 기나긴 고갯길을 무심히 걸어 올라오다가,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좁다란 오솔길 위에 시체 하나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언제 죽었는지 몰라도 썩어 가는 시체에는 파리 떼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시체 옆에는 쌀이 조금 들어 있는 뒤웅박과 지팡이 하나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시체의 주인공은 거지임이 틀림없다.
[쯧쯧쯧! 거지도 사람인데, 이 사람이 어쩌다가 깊은 산중에서 이 꼴이 되었을까!]
따지고 보면, 자기 자신도 하나의 걸객에 지나지 않으므로 김삿갓은 눈앞의 시체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김삿갓은 시체를 매장해 줄 생각에서 삿갓과 두루마기를 벗어 부쳤다. 시체를 오목한 장소에 끌어다 놓고 여기저기서 흙을 옮겨다가 무덤을 만들어 주자니, 무덤답지 못한 무덤을 만들어 주는 데도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김삿갓은 무덤 앞에서 고개를 깊이 수그려 절한 뒤에, 다음과 같은 시를 소리 내어 읊었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 그대의 고향은 어데이던고 낮에는 썩은 몸에 파리가 들끓더니 저녁에는 까마귀가 고혼을 울어 주네.
不知汝姓不知名 (불지여성부지명) 何處靑山子故鄕 (하처청산자고향) 蠅侵腐肉喧朝日 (승침부육훤조일) 鳥喚孤魂弔多陽 (조환고혼조다양)
짤막한 지팡이는 그대의 유물이오 몇 됫박 남은 쌀은 구걸한 먹거린가 마을 사람들은 내 말 좀 들어 보소 흙 한 줌 날라다가 풍상이나 가려 주지.
一尺短공身後物 (일척단공신후물) 數升殘光乞時禮 (수승잔광걸시예) 寄語前村諸子輩 (기어전촌제자배) 携來一 掩風霜 (휴래일궤엄풍상)
얼마나 허망한 죽음인가! 그 모습 하나로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우리는 알 수 있으니. 음..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하고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하자... 별로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되면 최소한 스스로는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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