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아버지의 산/임형신
浮石
2011. 9. 20. 09:23
아버지의 산 / 임형신
새터로 이사 온 날 아버지는 앞산을 가리키며 "저기 산이 안 있느냐"시는데 여남
살 먹은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살아오다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아듣
고 기억속의 산 하나 복원해낸다
눈에 갇혀 있는 노령(蘆嶺)의 국망봉 아래, 해묵은 할머니 기침소리만 남겨두고 대
처로 떠돌던 아버지가 내려놓고 다닌 산, 역천(逆天)의 길을 버리기가 그토록 어려
웠던가 천방지축 길 아닌 길로만 다니다가 잔주름으로 여위어가는 아버지의 산 앞에
다시 서 있다
아버지가 두고 간 산을 읽는다 상형문자로 집자 된 궁궁을을(弓弓乙乙) 아침마다
외우던 푸른 주문 몇 가닥 등고선에 걸려 있고 그 옆에 내 마음 속 깊은 골 작은 산
하나도 따라와 큰 산 옆에 누워있다
한번 다녀오면 반년은 넉넉히 견딘다는 단목령(檀木嶺) 지나 쇠나드리 벌에 있는
누이의 가을 산도 따라와 있고
아버지의 손가락 끝에 붉은산은 매달려 있다
* 2008년 불교문예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