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여사 생가
옥천 구읍의 한옥 "교동집"은 육여사가 나고 자란집이다. 허물어진 채 생가 터만 남았다가 복원을 마치고 2011년 5월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 집은 조선초기, 1600년대 김정승이 처음 지어 살고 이어 송정승, 민정승등 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삼정승이 살았다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리었던 이 집은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정승의 자손 민영기에게 사들여 고쳐 지으면서 조선 후기 충청도 반가의 전형적양식의 집으로 탈바꿈했다.
사랑채
생가는 육영수여사의 회고에 의하여 건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마방이 있고, 대문과 마주보는 곳이 사랑채였다 한다. 사랑채 왼쪽에 건너채가 있었고, 사랑채를 돌아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가 집터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안채에서 왼쪽으로 행랑, 오른편으로 연당사랑, 뒤로 돌아 별당, 후원에 사당과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랑채
초서로 한 일(ㅡ)자를 쓰려면 옆으로 힘차게 가로 그어 가다가 붓에 힘을 모아 멈추는 잠두에서 아래로 내리 뻗치는 그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기가 모인 아늑한 양지받이에 터를 잡은 교동집은 풍수지리학 상 명당에 자리 잡은 집으로 알려져 왔다.
집의 후원과 과수원을 합치면 26,400㎡에 대지 10,000㎡ 규모의 집이니 규모면에서도 보통의 집 수준을 넘어선다. 아흔 아홉 칸의 집이었다는 이야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연당사랑
연당사랑
연당사랑에서 윗채로 통하는 쪽문
윗채
윗채
정자로 가는 문
육영수여사가 거처하던 방
뒤주
연자방아
안채
육영수여사가 태어나 출가하기 전까지 생활하였던 곳으로 안방에는 어머니 이경령 여사가, 골방에는 육여사가, 동쪽 날개채 안사랑은 아버지 육종관씨가 주로 거주하였다고한다.
안방의 서쪽에 부엌이있으며, 부엌의 상부에는 안방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누다락이있다.
안채는 'ㄷ'자형의 구조로 몸채는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대청마루로 구성되며,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고 대청마루는 우물마루로 되어있다.
안채에서 창고를 거쳐 연당연못으로 통하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