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농다리
생거진천
옛날에 충북 진천에 살던 처녀가 경기도 용인으로 시집을 갔다. 그곳에서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다시 진천으로 돌아와 살다 재혼을 해서 아들을 낳고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장성한 용인의 아들이 자기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하고 진천의 아들도 자기가 모셔야 된다고 하며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인의 아들이 원님께 소장을 제출했다. 원님은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원님의 손자가 "할아버지, 무슨 고민 있으세요, 진지도 못 드시고." "네가 알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래도 말씀해 보세요." 용인 아들, 진천 아들 이야기를 들은 손자가 "할아버지,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동안에는 진천 아들이 모시고, 돌아가시면 용인 아들이 (제사를) 모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원님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래서 어머니 생전에는 진천 아들이 모시고, 돌아가신 후에는 용인에 묘를 만들고 용인 아들이 잘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다. '살아서는 진천에 거하고, 사후에는 용인에 거한다'는 말이다.
농다리 :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다리로 '농다리'라고 불리고 있는 아름다운 모양의 돌다리(石橋)이다.
『상산지(常山誌)』(1932)에는 '고려초기에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는 28수(宿)를 응용하여 28칸으로 만들어졌다.
사력암질의 붉은 색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후, 상판석을 얹어 놓고 있다. 이 다리의 특징은 교각의 모양과 축조방법에 있는데, 돌의 뿌리가 서로 물려지도록 쌓았으며 속을 채우는 석회물의 보충 없이 돌만으로 건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교각의 폭은 대체로 4m 내지 6m 범위로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올수록 좁아지고 있어 물의 영향을 덜 받게 하기 위한 배려가 살펴진다.
비슷한 예가 없는 특수한 구조물로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상판석의 돌은 특별히 선별하여 아름다운 무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농다리는 고려초기에 놓여져 1천년의 신비를 지닌 국내 유일의 돌다리로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생거진천」의 귀중한문화유산으로 총길이 94m 폭 3.6m 교각의 두께가 1.2m이며 교각과 교각의 사이는 0.8m로 자주빛 자연석을 그대로 쌓았음에도 견고하여 장마가 져도 다리위로 물이 흐르도록 설계되어 1000년의 세월에도 유실되지 않는 축조기술이 매우 뛰어난 유산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