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강화 덕진진(德津鎭)

浮石 2015. 2. 23. 07:00

 

원래 덕포진이 강화에 있었는데 1666년(현종 7)에 통진(지금 김포시 대곶면)으로 옮겼다. 그 자리에 덕진진이 설치됐다.
덕진진은 손돌목돈대와 덕진돈대를 관할했다. 숙종 대에 이곳에 덕진정사라는 행궁을 지었다. 이후 행궁이 읍내에 새로 건립되면서 덕진정사는 폐지됐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했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지금 덕진진에는 문루인 공조루(拱潮樓), 남장포대, 덕진돈대 그리고 대원군이 세운 해문방수비(海門防守碑)가 있다. 해문방수비에는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라고 새겨졌다.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사적 제226호. 지정면적 15,018㎡. 현재 문루()·포대()와 성곽·돈대()가 남아 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의 방비책을 강구하여 내성()·외성()·진보·돈대 등을 축조하였는데 12진보는 그 중의 하나로 강화도 주위에 설치되었다.

 

덕진진은 원래 수영()에 속하여 첨사(使)를 두고 있었는데, 1666년(현종 7) 강화유수 서필원()의 계청()으로 첨사를 통진()땅 덕포()로 옮기고 이곳에 별장()을 두었으며, 1677년(숙종 3) 유수 허질()의 계청에 따라 만호()로 승격시켰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남장()·덕진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만 남게 되었다. 1976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였으며 홍예(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화남 고재형선생의 시 '덕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