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불암사(佛巖寺)

浮石 2015. 5. 28. 06:00

 

친구집에 갔다가 예기치 않게 방문하게 되어 미처 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했다.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의 문(門)이다. 사찰의 입구에 일주문을 세운 것으로 신성한 곳으로 둘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먼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向)하라는 뜻에서이다.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불도를 닦는 사람은 지국한 일심으로 부처와 진리를 생각하면서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고 한다.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많은 현판(懸板)들을 걸어 사찰의 격(格)을 나타내기도 한다. 불암사입구에 일주문 현판의 좌우 기둥에〔摩天劫而不古 마천겁이불고〕와 〔亘萬歲而長今 긍만세이장금〕이라는 주련(柱聯)이 붙여져 있다.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항상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대웅전에는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는 수미단(須彌壇)과 신중(神衆)을 모시는 신중단, 그리고 영가(靈駕)를 모시는 영단을 두고 각 단마다 탱화를 모신다. 또 촛대와 향로 등의 불구(佛具)를 마련해 둔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에는 좌우에 협시불(脇侍佛)을 세우는데, 문수보살과 부현보살을 세우기도 하고,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세우기도 한다. 이 중 후자의 경우에는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한다.

협시불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세우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다.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부처의 왼쪽에 여의주나 칼·청련화(靑蓮花)를 들고 있거나 청사자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 부처의 덕(德)을 상장하는 보현보살은 부처의 오른쪽에 연꽃을 들고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문수·보현보살 대신 부처의 자비를 상징하는 미륵·관음보살이나 지장·관음보살을 세우기도 한다. 한편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협시불로 세울 떄는 각 여래상 좌우에 다시 협시보살을 두기도 한다.

약사전에는 약사불이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태영처럼 빛나는 지혜와 덕상을 지닌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광보살을 , 오른 쪽에는 달처럼 청정한 덕상을 갖추고 중생을 교화하는 월광보상을 배치한다.

동방 정유리광세계(淨瑠璃光世界)에 살면서 12대원(十二大願)을 발하여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 주는 의왕(醫王)으로서 신앙되었던 부처이다. 양사여래는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동방의 정유리 세계를 다스리며 모든 병을 고쳐주는 위대한 부처인데, 보살로 수행할 떄에 중생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약사십이대원'이라는 12가지 성원을 세웠다.

칠성광여래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 출발하여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으로 믿어왔다. 원래는 도교의 칠원성군(七元星君), 옥황상제(玉皇上帝), 북극대제(北極大帝)라 칭하며, 불교의 칠성여래(七聖如來), 삼신(三神), 석가여래는 다 같은 법신불(法身佛)이다.

칠성광여래는 북두칠성의 가장 중요한 북극성이고 큰곰자리에 있다. 도교에서는 북극성(北極星)을 자미대제(紫薇大帝), 북극대제(北極大帝)라 하고,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라 한다. 필성탱화의 구도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가 주불(主佛)이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상이 좌우 보처이고, 그 주위에 일곱 여래와 칠원성군, 3대 6성 28숙 등이 도설되어 있다. 칠여래와 함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불교의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수용하고 이를 의인화하여 묘사한 불화이다.  

칠성탱화의 칠여래와 함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을 불교의 호법선신으로 수용하고 이를 의인화하여 묘사한 불화이다. 칠성탱화는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칠성을 봉안한 전각의 후불도이다. 본존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좌우로 일광보살과 월광 보살이 약사여래후불도에서와 같이 등장하며, 일광보살은 해를 보관에 얹고 있으며 번뇌를 제거하고 광명을 가져다 준다. 월광보살 역시 달을 보관에 얹은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며 중생 인도를 완성하겠다는 대서원을 발하신 분이다. 그리고 본존의 좌우에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칠여래로 상징화되어 나타나 있다.

 

이 칠성광여래는 불교에 흡수되면서 처음에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가 점차 본래의 기능을 되찾아 별도의 전각인 칠성각에 모셔지게 되었다.

 

 

십이지신상

 

마애삼존불상

석가사리탑

 

 

대한불교조계종 제 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824년(신라 헌덕왕 16년) 지증이 창건하였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의 개조 지선(智詵)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으나, 지선은 824년에 태어났으므로 지증 창건설이 더 믿을 만하다. 도선(道詵: 827~898)과 자초(自超: 1327~1405)가 중창하였으며, 세조(재위: 1455~1468)가 한양 외부 사방에 왕실의 발전을 기원하는 사찰을 하나씩 뽑을 때 동쪽 사찰로 뽑혀 동불암(東佛巖)이라고 불렸다. 이 때 서쪽에서는 진관사, 남쪽에서는 삼막사, 북쪽에서는 승가사가 함께 뽑혔다.

성종(재위: 1469~1494)때 중건하고, 1776(영조 52)에 거의 폐사 상태에 이른 것을 명관(明瓘)이 크게 중수하였다. 이 후 1782년 (정조 6년)부터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중수하고 제월루를 세웠다. 1844년(헌종 10년)에 다시 중수하고, 춘봉(春峯)이 향로전울 재건하였으며 1855년에는 혜월(慧月)과 보성 등이 중수하였다. 1910년에는 독성각과 산신각·동축당을 세웠고 1959년에는 만허(滿虛)가 칠성각을 세웠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제월루·관음전·산신각·독성각·동축당·수성전 등이 있다. 이 중 수성전은 영친왕 이은(李垠: 1897~1970)의 어머니 엄비(嚴妃)가 세운 것이라고 한다. 유물로는 보물 제 591호로 지정된 《석씨원류(釋氏源流)》 목판 212장이 유명한데, 이것은 1638년(인조 16년) 왕명으로 역대 승려의 법통을 정리한 것으로 고창군 선우사와 이 사찰에만 전해 내려오던 것이다.

 

그 밖에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된 불암사경판과 1731년(영조 7년)에 조성된 천보산불암사사적비가 있으며, 절 뒤 암벽에는 근래에 조각된 마애삼존불이 있다. 경내에는 1989년 태국과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 사리를 모신 진신사리보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