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옥박사 유석애도가(유정천리)
1960년 3월15일 정부통령 부정선거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 규탄대회가 열렸다. 4월12일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처참하게 떠오르고 이어 4월18일 고려대 피습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격분한 시민과 학생들은 4월19일 고려대생의 부정선거 무효궐기대회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4월26일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내고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4·19혁명은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우리 민족의 정의감과 시민의식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면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이 때 유행한 노래가 <유석애도가>다.
국민의 존경과 지지를 받던 대통령 후보 유석 조병옥 박사가 선거를 한달 남기고 2월15일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서거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의 추앙을 받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 선거일을 열흘 남기고 호남선 열차 속에서 서거한 지 4년 만에 또다시 비보가 전해진 것이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자유당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해공 신익희 선생이 호남선 열차 안에서 갑자기 서거하는 총격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 뒤로 때마침 나온 노래 <비 내리는 호남선>은 해공 선생 애도가로 제목이 바뀌면서 널리 불렸다고 한다.
또한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역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유석 조병옥 박사가 위장병으로 갑자기 쓰러져 숨지자 <유정천리>가 ‘유석 애도가’로 대대적으로 불렸다고. 나중에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유정천리>는 “민주당에 꽃이 피네 자유당에 눈이 오네”로 바꿔 불리며 기쁨의 노래가 되기도 했단다.
대구 경북지역 중·고생과 시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유정천리> 곡에 맞추어 <유석애도가>가 전국적으로 불리게 됐다. 4·19를 계기로 민주화의 기틀을 놓는데 귀중한 노래건만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선생 뒤를 따라
장면박사 홀로두고 조박사도 떠나가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은 몇 굽이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춘삼월 십오일에 조기선거 웬말인가
천리만리 타국 땅에 박사죽음 웬말인가
설움어린 신문들고 백성들이 울고있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선생 뒤를 따라
장면박사 홀로두고 조박사도 떠나갔네
천리 만리 타국 땅에 박사 죽음 왠 말인가
눈물어린 신문들고 백성들이 울고 있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춘삼월 십오일에 조기 선거 왠 말인가
가도 가도 끝이없는 당선길은 몇 구비냐
민주당에 꽃이 피네 자유당에 눈이 오네.
1960년 이 노래는 자유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가사로 둔갑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대통령 선거일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대선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미 육군병원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4년 전인 1956년 대선 때도 해공 신익희 선생을 잃었던 국민들은 연이어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망연자실했다. 조 박사의 서거를 기화로 그동안 쌓여왔던 민초들의 울분이 대폭발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자유당 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사표를 내고 귀향하는 공무원과 양심선언을 하는 경찰관들이 속출했다. 교사들도 '차마 얼굴을 들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학교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