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삼산면 석모리 전경
앞에 보이는 2층 건물이 삼산면사무소이다.
조선시대의 석모동(현 석모리)·돌캐동(현 석포리)·등 3개 동으로 구분 호칭되었고, 1914년 강화부와교동부가 폐합하여 면제가 실시됨에 따라 교동부에 속했던 송가도(현 상·하리)가 삼산면으로 환원되면서 부속도서인 서검리·미법리를 포함 7개리로 구성하게되었다.
삼산면(三山面)
군의 서쪽 바다에 위치한 면. 면적 45.62㎢, 인구 2,3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모리이다.
본래 강화군 지역으로 여러 섬으로 되어 제도면이라 해 석포도·매음도·석모도 등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교동군 송가면의 일리 등을 병합해 삼산면이 되었다.
면의 북부에는 상주산(上柱山, 264m), 남부에는 상봉산(上峰山, 316m) 및 해명산(海明山, 327m)이 있다. 북부와 남부 산지의 중앙에는 송가평(松家平)이라 불리는 넓은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북부와 남부의 산지는 원래 송가도와 석모도로 각각 분리된 두 개의 섬이었는데, 그 사이 갯벌을 간척해 넓은 평야가 개척되고 하나의 섬으로 붙어버렸다.
남부의 상봉산, 해명산의 남쪽도 넓은 평야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남쪽의 어유정도(漁遊井島)와의 사이를 간척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평야지역에서는 벼농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보리와 인삼 등이 생산된다. 한우·돼지 등 가축도 사육되고 있다.
해안지역에서는 굴·백합 등의 양식업도 활발하며, 서검도의 염전에서는 소금도 생산된다. 교통은 석포리에서 강화도 내가면 외포리를 잇는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고, 섬 내의 도로망 발달은 미약하다.
문화유적으로는 매음리의 보문사(普門寺)에 석실과 마애석불좌상, 향나무 등이 있다.
석모(席毛) 1∼3리·상(上) 1∼2리·하(下)·석포(石浦)·매음(煤音) 1∼3리·서검(西檢)·미법(彌法) 등 12개 행정리가 있다.
돌섬
산이 있으면 좌청룡 우백호라 하는 거야. 그래 여기가 청룡인데, 이 삼산면을 만드는데, 이걸 계산해보니까 삼백년은 못됐어. 이백칠십에서 팔십년은 추산하겠어.
삼산면을 막는데, 여기에 수문을 만들어야겠는데, 수문 자리는 지반이 좋아야 되잖아? 그런데 산뿌리를 죽이는데, 여기서 산혈을 끊으니 피가 나오더라는 거야, 산에서. 방조제 만들 적에 수문자리를 파니까. 그랬는데 이걸 자르니까 산에 샘 모양으로 피가 나오는데, 이 바위가 붉게 물든 거야. 그래서 붉은 바위가 됐어요.
근데 우리 아저씨 집에 어떤 도사가 들렀는데, 도사가 “여기는 아무래도 비렁뱅이만 산다.”
“왜 그러하냐?”
“여기는 청룡을 잘라서 이 바위가 죽었기 때문에 이것을 이어줘라.”
그래서 우리 아저씨가 동네사람 풀어서 술 먹여가면서 그걸 져다 이걸 막았어요. 막고나서 동시에 삼산면이 수리조합이 됐어. 그러니까 이것이 물로다 잠겼어. 잠기니까는 이어진 거나 다름없지. 그래 삼산면에 수리조합이 앉히니까는 이것이 물에 잠기고 이어지니까 이으면 잘 산다더니 도사의 말이 맞아. 예전에는, 수리조합이 없을 때는 밥도 못 먹고살았거든.(이병준씨 : 수원 팔달산 맞은 편의 숙지산이라고 있어요. 도선 스님.)
그래 그 사람이 이걸 막아라 했는데. 이걸 막기 전에는 죽도 못 먹었어요. 아, 옷도 같이 사 입었어. 나도 장가갈 적에 누구 것 빌려 입고 갔어. 선보러 갈 때 오바 빌려 입고 갔어. 오바 하나에 쌀 세 가마 줘야 하고, 양복도 쌀 세 가마 줘야 하고. 삼십오년 전에. 그런 시절인데, 이거가 이십오년 됐다고, 수리조합이. 그야말로 부자됐어. 그래 이렇게 돼가지고 부자된 거야. (삼산면 석모3리 산밑골마을, 이균, 남, 64세)
용비어천가에도 나옵니다마는, 사자황이라고 해서 이 고장에서 자란 말이 아주 유명했답니다. 용비어천가에 그 사자황이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 말이 여기서 나왔답니다. 여기 목장이요,
저기 석모리, 지금 면사무소 뒤 거기 골짜기에도 마성터가 있고. 거기 말고리장이라고 지금 있는데, 말고리장이라고 뜻을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말고리장가지고는 말이 안되고, 말구류장이라고 하면 말이 되겠더라고요. 그러니까 말을 놔서 기르다가 외지로 이걸 내보내려면 말을 몰아서 가두는 데가 있어서 거기서 이제 붙들어 매가지고 하니까 이제 거기는 임시 구류장이라고. 이제는 말고리장, 지금은 그렇게 부르는 데가 많아요.
그리고 여기는 매음목장이라고 그래가지고요, 사자황이 났다고 하는 그 지역인데요. 여기는 그 때 자장별감이 여기 와가지고 말을 기르는 데 책임을 지고. 또 그 때 일본 구주함대, 또 불란서함대, 뭐 이런 외침을 목적으로 해서 오는, 그 방어를 하는 두 가지 책임을 지는 별감이 여기 살았다고 하더군요. 말이 그 숫자까지 나왔더라구요, 삼백이십칠 마리라고.
그리고 떨어져 있는 미법섬에도 목장이 있었대요. 근데 왜 그런고 하니 섬이기 때문에 방목을 해도 멀리 가지를 못하고, 그런 관리를 하는데 좋은 점이 있겠더라고요. 이 강화 본도에 북일목장이라고 큰, 국가에서 경영하는 목장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지면서 이 삼산으로 옮겼답니다.(삼산면 매음2리 절아래마을, 고건희, 남, 77세)
석모교회로 올라 가는길
언덕위의 멋진 교회당, 석모 감리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