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詩

[무식한 訓長]

浮石 2004. 12. 16. 11:10

[무식한 훈장]

지친다리를 쉬어갈 겸 김삿갓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절이나 서당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옛날에는 절이나 서당 같은 데서는 아무리 낯선 손님이 찾아와도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미풍 양속이 있었다 한다.

[여기서 20리쯤 가면 성미재 라는 서당이 있소]

하고 대답한다.
이윽고 성미재에 도착하니 낡아빠진 유관을 쓴 훈장이 수염을 쓰다듬으면 가만하게 묻는다

[댁은 어디서 오는 길손이요.]
[양주(楊洲)에서 오는 사람입니다.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들렸습니다.]
[양주?... 엊그제도 양주 손님이 하나 다녀갔는데 또 양주에서 왔다구?... 아무튼 이리로 들어 오시오.]

다행히 쫓아내지는 않을 모양이나, 매우 귀찮게 여기는 태도였으며 서당에는 10여명의 학생들이 책을 보고 있으나 열이 하나같이 천자문(千字文)이나 계몽선습 (啓蒙先習)을 읽는 조무래기뿐이고 고작 큰 아이라는 것이 겨우 사략(史略)을 읽을 정도였다.
겨우 자리에 앉으니 사략을 읽고 있던 아이가 책을 들고 와서

[선생님, 이게 무슨 글자 입니까]

하고 묻는데 김삿갓이 얼른 넘겨보니 동일 요(繞)라는 글자였다.
그러나 훈장은 암만 보아도 알 수 없는지 별안간 눈을 비벼대며,

[내가 돋보기가 없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구나.
내일 돋보기를 가지고 와서 가르쳐 줄 테니 그리 알고 있거라.]

하고 그냥 넘어가버리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서당을 지어준 풍헌영감에게는 방귀냄새도 달콤하다고 아첨을 하니, 이 모양을 보고 김삿갓은 가만있을 수 없었다.

산골 훈장이 위엄을 떨쳐 가며
낡은 관 높이 쓰고 가래침 뱉아 대네
고작 높은 제자가 <<사략>> 읽는 아이요
가깝다는 친구는 풍헌 영감이더라.

山村學長太多威 (산촌학장태다위)
高着塵冠 唾投 (고착진관삽타투)
大讀天皇高弟子 (대독천황고제자)
尊稱風憲好朋 (존칭풍헌호붕주)

모를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 대고
주석에선 늙었노라 술잔을 먼저 받네
서당 밥 한 그릇에 생색내며 하는 말이
금년 과객 모두가 양주 사람이라네.

                           

 每逢 字憑衰眼 (매봉망자빙쇠안) 
 輒到巡杯藉白籍 (첩도순배자백수) 
 一飯 堂生色語 (일반횡당생색어) 
 今年過客盡楊洲 (금년과객진양주)

    미운 훈장! 김삿갓이 시로 대신 꾸짖으니 내 마음이 다 후련하다.

 

'김삿갓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련한 可憐의 사랑]  (0) 2004.12.16
[술,술,술]  (0) 2004.12.16
[주막에서]  (0) 2004.12.16
[산속이 武陵桃源이라]  (0) 2004.12.16
[그림자]  (0) 200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