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皐 金炳淵

蘭皐 金炳淵

浮石 2010. 2. 12. 16:20

 

 

본관 안동(東) 본명 병연().(1807~1863) 자 성심(). 호 난고(). 경기 양주 출생.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使)로 있던 조부 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廢族)이 되었다.

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선천 방어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반군에 투항함으로써 그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역적의 집안으로 전락되어 멸족을 우려한 부친이 형과 함께 그를 곡산으로 보내 노비의 집에서 숨어 산다.

여덟 살에 조정의 사면으로 집으로 돌아오나 그 가족들이 온전히 터 잡고 살 곳이 있겠는가. 여주, 가평,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을 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모친의 후원에 힘입어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글공부에 힘 쓴다.

나이 스물, 결혼한 그 해, 운명을 다시 바뀌게한 영월에서의 백일장을 보게 된다.
과제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탄하라"

그는 조부를 규탄하는 명문으로 장원에 급제하나 할아버지를 팔아 입신양명하려고 한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껴 글공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며 은둔 생활을 한다.
그러나 신분 상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 가지만 부패한 과거 제도에 실망을 하고 어느 세도가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내던 중 그의 출신 성분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세도권 진입을 포기하고 스물 다섯에 기나긴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

방랑 초기에는 지방 토호나 사대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름대로의 품위를 유지하나 세상 인심이 한결 같을 수는 없는 것.
그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서민들 속에 섞여서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 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일생을 보낸다.

그의 나이 쉰 일곱, 전라도 화순의 동복 땅에서 눈을 감았다.
아들 익균이 유해를 영월로 옮겨 장사 지낸다.
영월 와석리에 그의 생가터와 묘지가 있다.


그의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고, 그런 작품에 뛰어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방랑을 계속하여
전라도 동복(: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작품으로 《김립시집(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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