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노수신적소盧守愼謫所 - 수월정(水月亭)

浮石 2015. 12. 8. 09:50

멀리 조그마하게 보이는 한옥이 노수신 적소(수월정)이다.(2009년 촬영) 

2009년의 산막이마을 모습

 2014년 7월 촬영한 산막이 마을..  펜션이며,새로운 주택들이 많이 들어섰다. 화면 왼쪽 조그만 한옥이 노수신 적소이다.

 

노수신 적소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신하인 노수신(1515∼1590)이 귀양살이를 하던 곳으로, 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 하였다. 수월정은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노수신(1515~1594)이 을사사화로 유배되어 와서 거쳐하던곳이다. 노수신은 자를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라 했으며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중종 1543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영종이 즉위하고(1546)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이조좌랑으로 있다가 명종 2년(1547)에 순천에서 진도로 보내져 19년간 섬에서 귀양을 살았다.그후 명종 20년(1585)에 이곳으로 옮겨와서 2년만에 선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다.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본래는 연하동에 있었으나 1957년 괴산 수력발전소의 건설로 수몰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운것이다."수월정"이란 간판이 걸려있다.

 

노수신은 대윤(大尹)의 한 사람으로 영의정에 올랐으나,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황·기대승 등과 주자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본관은 광주.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茹峰老人).

아버지는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를 지낸 홍(鴻)이다. 장인인 이연경(李延慶)에게 배웠으며, 휴정(休靜) 등과 사귀면서 불교의 영향도 받았다.

1543년(중종 38)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전적·수찬을 지냈다. 1544년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가 되고, 같은 해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대윤(大尹)에 속하여 인종 즉위초에는 정언을 지내면서 소윤(小尹) 이기(李芑)를 탄핵하여 파직시키기도 했다. 1545년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문정대비(文定大妃)가 수렴청정을 하자 대비의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을 비롯한 소윤이 정권을 잡은 뒤, 윤임(尹任) 등의 대윤을 제거하기 위하여 1547년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그는 소윤계열인 윤춘년(尹春年)과의 친분으로 죽음은 면했으나, 이조좌랑에서 파직되고 순천으로 유배되었다. 1547년(명종 2) 정황(丁熿)과 함께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탄핵을 받고 진도로 옮겨 19년간 귀양을 살았다. 1565년 괴산으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1567년(선조 즉위년)에 풀려나 교리·대사간·부제학·대사헌·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내고, 1573년 우의정, 1578년 좌의정, 1585년 영의정이 되었다. 1588년 영의정을 사직하고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과거에 정여립을 천거한 일이 문제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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