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25호.
종묘의 건물은 1394년 10월 태조가 서울로 수도를 옮긴 그 해 12월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다시 지어졌다.
건물들은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으로 나누어 정전에는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선왕과 그 왕비의 신주를 순위에 따라 모시고, 영녕전에는 추존(追尊)된 선왕의 부모나 복위된 왕들을 모셨다. 그리고 정실의 출생이 아닌 왕이 그 사친(私親)을 봉안하는 사당으로서 따로 궁묘(宮廟)를 두었다.
종묘의 제사일은 4계절의 첫달 상순, 정초·단오·한식·추석, 동지의 납일과 매월 삭망(朔望)일로 정하였으며,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친제하여 왕세자는 아헌관, 영의정은 종헌관이 되어 작헌(酌獻)·분향(焚香)·재배의 복잡한 절차를 밟으며 향사한다. 그러나 국상일의 경우에는 이를 피한다.
종묘행사는 국가적 행사인만큼 이에 따르는 의식과 의복·제기(祭器)의 규격, 제물(祭物)의 종류·수 등은 엄격하게 규정하고 준수한다. 그리고 문묘와 달리 고려의 예를 따라 역대 공신을 위한 공신배향(功臣配享)이 있다.
종묘의 건축물들과 600여 년간 제례행사를 지내 온 가치가 인정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사를 지낼 때에 춤과 함께 연주되는 음악인 종묘제례악(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 세종대와 작곡)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되었다.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어가행렬과 함께 전주 이씨 종친에 의한 제사로 거행된다.
종묘는 사직단과 함께 조상에 대한 예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종묘는 원래 정전(正殿)을 말하며,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태묘는 태조의 묘(廟)가 있기 때문이다. 역대 왕과 왕후는 사후에 그 신주를 일단 종묘에 봉안하였다.
공덕이 높아 세실(世室 : 종묘의 神室)로 모시기로 정한 제왕 이외의 신주는 일정한 때가 지나면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 모셨다. 이것을 조천(祧遷)이라고 한다. 종묘 즉 정전에는 현재 19실(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의 신주를 모셔놓고 있다. 정전 서쪽에 있는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그리고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의 신주를 16실에 모셔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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