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痕跡

김삿갓묘가 발견되기까지

浮石 2005. 10. 24. 14:21

 

 

김삿갓묘가 발견되기까지

 

죽장에 삿갓 쓰고 전국을 떠돌던 김삿갓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1863년 3월 25일, 57세의 나이로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객사를 하게 된다.  

 

부친의 행방을 찾아헤매던 익균은 부친의 유골을 자기 집 가까운 영월로 이장을 해온다.

역사적 기록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김삿갓이라는 이름은 조선 팔도의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이 없이 세월을 뛰어넘어 전해져 내려왔지만 아무도 김삿갓의 묘에는 관심이 없었다.

까마득하게 잊혀질 뻔했던 김삿갓의 묘를 찾아낸 것은 80년대 초 영월 읍내의 유지였던 고 박영국 선생 덕택이었다.

 

전국으로 널린 김삿갓의 시편과 일화를 모으며 그 누구도 몰랐던 김삿갓의 시를 39편이나 더 찾아내기도 했던 선생은 영월 구석구석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와석리 노루목에서 김삿갓의 묘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안동 김씨 대종회에서는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 사초를 하고 정식으로 묘비를 세우게 되었다. 그것이 84년도의 일이다.

 

영월읍내에서 와석의 노루목까지는 70리길.

당시만 해도 노루목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와석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20리 산길을 걸어가야 했다.

지금은 그 산길 20리 계곡이 김삿갓계곡이라 하여 모두 포장되어 묘역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말이다.

발견 이듬해인 85년 9월에 소설가 정비석은 <소설 김삿갓>을 쓰기 위해 그에 앞서 일흔다섯의 노구를 무릅쓰고  김삿갓묘를 찾게 되는데 그 일화가 매우 재미있다.

 

영월읍에서 하동면 와석리까지는 70리밖에 안 된다기에, 지프라면 쉽게 다녀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50리쯤 가면 제법 큰 개울이 있는데, 만약 지프가 못 건너가게 되면 사람은 옷을 벗고 건너가, 20리쯤은 걸어서 다녀와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70을 넘은 늙은이가 옷을 벗고 물을 건넌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질색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은 천신만고하여 마침내 와석리의 노루목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이라는 것은 이름뿐이고, 개울가 좌우편 언덕배기에 서너 채의 집이 쓸쓸하게 매달려 있을 뿐인 곳이었다.

박영국씨가 경사진 언덕배기 위로 달려 올라가더니, 화전 한 귀퉁이에 오직 하나뿐인 무덤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이 무덤이 바로 김삿갓의 무덤입니다."
첫눈에 보아도 외롭기 짝없는 무덤이었다.

그 무덤 앞에는 높이가 두어 자 가량 되어보이는 묘비가 서 있는데 그 묘비에는
"蘭皐 金炳淵之墓"
라는 일곱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렇듯 김삿갓묘는 발견되고 나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점으로 인하여 한동안 관리도 소홀하게 이루어졌으며 찾는 이들도 뜸한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초부터 진입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묘지 부근 밭을 모두 사들여 묘역일원을 개발하면서부터 전국에서 시인을 기리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98년에 제1회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개최된 이후 매년 10월이면 묘역일원에서 문화제가 열리며, 근처에 김삿갓문학 기념관이 건립예정이고, 그리고 좀 더 들어간 골짜기에 김삿갓 생가가 복원 예정에 있다.  (2005년 현재 복원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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