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淸心祠堂

浮石 2007. 5. 17. 09:29

 

 

 

 

오대천변에 눈이 내린다. 달력은 3월 10일을 가리킨다. 여행자는 '3월에 폭설이라니'라고 중얼거린다. 내리는 눈은 지난 겨울에도 몇 번 만나지 못했던 함박눈이다. 주변의 높은 산들은 이미 흰옷으로 갈아 입었다.

봄이 왔다는 소식은 적어도 오대천에서는 잘못 배달된 편지처럼 어색했다. 천변으로 버들강아지가 피어 있지만 함박눈과 뒤엉켜 노는 모습은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습기를 머금은 함박눈은 소리도 없이 내린다. 가끔씩 나무가지에 얹혔던 눈이 툭툭, 떨어지며 여행자의 시선을 끌 뿐 주변은 고요하다. 내리는 함박눈이 반가웠던지 물은 몸을 이리저리 뒤채면서 수면에 내려앉는 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속삭이는 듯 들려오는 작은 어울림은 함박눈과 물이 만들어내는 사랑이야기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난데없이 배가 고파왔다. 오후 3시. 허기가 질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밀려드는 허기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주머니를 뒤져 본다. 빈 속을 채울 것은 담배뿐이다.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길게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한숨처럼 세상 밖으로 뿜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뱃속을 채우는가 싶더니 빠져나나길 몇 차례. 허기는 몸을 빠져나와 눈밭으로 달아난다.

이건 정신적 허기다. 어느 순간 함박눈과 강물의 사랑에 질투가 났던 모양이다. 함박눈과 강물의 사랑 놀음에 길 가던 여행자의 얼굴이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런 일로 허기까지 느끼다니. 민망한 일이다.

마침 잘됐다. 눈이 내린다니 기생 청심이나 만나야겠다. 이런 날은 청심이와 하루를 보낸다 해도 아깝지 않을 날이다. 기생 청심이를 만나려면 오대천변에 있는 청심대로 가야 한다. 청심대는 진부에서 정선으로 이르는 59번 국도변 마을인 마평리에 있다.

오대천은 명산인 오대산 서대사 우통수에서 발원한 남한강 상류의 물줄기다. 우통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월정사를 지나 평창군 진부를 적신 후 굽이치는 숙암계곡을 만들어낸다. 계곡을 빠져나간 물은 150리를 흘러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에서 조양강과 만나면서 남한강 상류가 된다.

청심대가 있는 진부면 마평리는 오대천이 만든 진풍경이다. 마평리는 예전 강릉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생겨 두어시간 남짓이면 서울땅에 당도하지만 예전엔 보통 보름은 걸리는 여정이었다. 서둘러 돌아와도 한 달이 더 걸리는 한양길은 멀고도 먼 여정이다.


오랜 여정에서 만들어지는 사연도 많다. 율곡의 아비인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율곡을 잉태한 곳도 한양을 오가는 여정에서였다. 율곡을 잉태한 곳은 평창의 백옥포리 마을이다. 사람들은 율곡이 나자 그곳을 아비인 이원수의 관직을 따 판관대라고 불렀다.

청심대에 오르면 마음까지 맑아진다

강릉에서 대관령을 넘은 이들에게 마평마을은 첫 쉼터자 하룻밤 묵어가는 장소였다. 마평엔 옛날 인락원(仁樂院)이 있었다. 인락원은 관원들이 묵어가는 숙소이다. 강릉에서 아침밥을 먹고 출발하여 어둡기 전에 당도할 수 있는 곳이 마평의 인락원이다.

강릉을 오가는 이들의 왕래가 관리들뿐이 아닌지라 인락원 주변은 주막도 제법 들어섰다. 아름다운 오대천변은 긴 여정에 지친 이들의 심신을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차고 맑은 물과 함께 주변의 수려한 산세는 하루를 머문다 하여도 지루함이 없었고, 바쁜 일이 없다면 며칠이라도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인락원 옆엔 천변을 끼고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 하나가 있었으니, 그곳에 올라가 풍류를 즐기는 맛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수십길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에서 내려다보는 오대천은 한폭의 그림이라 한들 손색이 없다.

후일 '청심바위'라고 불리워진 바위산에 마을 사람들은 청심대(淸心臺)와 기생 청심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다. 1928년의 일이다. 청심대는 그 역사가 비록 짧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비가 오거나 단풍이 곱게 드는 날 청심대에 올라 본 일은 있었지만 눈 내리는 날 청심대에 오르긴 처음이었다. 바위산이라고는 하지만 길에서 청심대까지 오르는 길은 숨 한 번 차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그러나 청심대에 이르는 길에 올라서면 누구든 그 경치에 금방 취해 버린다.

청심대는 번잡하거나 탁 트인 여느 곳과 달리 자신의 집처럼 아늑하다. 정자에 올라 솔바람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낸다 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곳이다. 여름이면 하룻밤 묵으며 청심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재미도 있다.

청심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는 청심의 넋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살갑고 친근하다. 청심대를 지나 입석에 서면 아득한 절벽 위에 올라선 듯 아찔하다. 기생 청심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곳이다.

이곳이 '청심바위'란 이름이 붙여진 연유는 이러하다. 조선조 태종이 왕이었던 시절이고 때는 1418년이다. 강릉부 대도호부사로 있던 박양수라는 사람이 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조정의 내직으로 영전이 되어 한양길에 오르게 된다.


이때 함께 동행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가 강릉의 기생 청심(淸心)이다. 박양수가 강릉 부사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눈 사이로 청심이 박양수를 배웅하는 길이었다.

님을 기다리던 청심은 결국 스스로 몸을 던지고

청심은 당시 이름난 기생이 그러하듯 빼어난 미모에 시와 그림과 가무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청심은 박양수를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박양수 또한 그러한 청심을 깊이 사랑하였다.

한양으로 가기 위해 강릉을 떠난 박양수 일행은 인락원에서 며칠을 머문다. 인락원에서 석별의 정을 나눈 두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어느 가을날 아침 박양수는 청심을 두고 길을 떠난다.

박양수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 없었던 청심은 강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청심은 자신의 신분이 기생인지라 강릉으로 돌아가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를 품을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청심은 마평에 머물기로 했다.

박양수가 자신을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까지 했으니 기다리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다시 가을이 되었다. 사랑하는 님과 이별한 지 1년이 되었지만 박양수로부터는 어떤 기별도 오지 않았다.

눈물로 지새우는 날이 많아지면서 청심은 결국 병을 얻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청심의 일편단심을 위로하며 정성으로 간병 하였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어느 날 청심은 박양수와 마지막 정을 나눈 바위에 올라 속 깊은 통곡을 한 후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어느 가을 날 햇살이 곱게 퍼지는 시간 노랗게 물든 단풍잎 하나 절벽으로 떨어지니 그것이 청심이다. 청심이 죽자 마을 사람들은 시신을 수습하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청심의 애닯은 넋을 위로하는 제를 올렸다. 600여년 전의 일이다.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어느 때든 사랑은 존재했으며 그에 따른 슬픈 사연은 곳곳에 남아 있다. 기생과 나눈 사랑이야기는 비단 박양수와 청심뿐 아니다. 이들보다 후에 살았던 삼당시인의 하나인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사랑은 더 애틋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눈 내리는 날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이 이별하게 되는 사연이야 박양수와 청심이 그랬던 것과 다름없지만 최경창과 홍랑의 사랑은 더 깊고도 애절했다. 홍랑이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며 즉석에서 읊었던 시조는 지금도 전해진다.

묏버들 가려 꺾어 님의 손에 보내노니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닙 곳 나거든 나인 줄로 여기소서


때는 봄이었고 홍랑은 버드나무 가지 하나 꺾어 최경창에게 건네며 자신의 사랑을 간절하게 표현했다. 훗날 최경창이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들은 홍랑은 남장을 하고 한양에 올 정도로 그에 대한 사랑이 컸다.

함경도인은 도성 출입을 금한다는 국법을 어긴 죄로 다시 한양을 떠난 홍랑은 꿈에도 못 잊을 사람인 최경창이 죽음을 맞이한 후에야 만나게 된다. 홍랑은 최경창의 묘 앞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한다.

▲ 기생 청심 영정 그림. 꽃다운 나이에 몸을 던졌다.
ⓒ 강기희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다 죽음을 선택한 청심이나 사랑하는 님을 찾아나선 홍랑의 사랑이나 종말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들의 사랑이 남긴 것은 위대하고도 크다. 하룻밤 만나 사랑하고 다음 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별하는 요즘의 사랑법으로는 그들의 사랑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청심이 스스로 몸을 던진 절벽 위엔 높이 3미터도 넘어 보이는 큰 바위가 있다. 바위는 묘하게도 둘로 나뉘어져 키를 재고 있는데, 마치 박양수와 기생 청심이 나란이 서서 흐르는 오대천을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

도무지 바위가 있을 성싶지 않은 곳에 우뚝 서 있는 바위는 두 사람이 죽어서라도 만난 듯 자연스럽고 풍기는 멋이 고고하다. 어둠이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시간 둘로 나뉘어진 바위는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 내린 눈으로 벌어진 틈을 메운다.

여행자는 두 사람이 살아생전 미처 나누지 못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떠 사당으로 간다. 청심을 기리는 사당은 오늘도 굳게 잠겨 있다. 언젠가 사당 안에 있던 영정그림을 도난 당한 적인 있는데, 그 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청심의 영정그림을 도난 당한 후 마을엔 흉한 일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을 남정네들이 죽음을 맞았는데 그 수가 1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다시 청심의 영정을 모신 이후로 그런 일은 멈추었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9월 28일 청심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

청심이 모셔진 사당을 나와 그 옛날 박양수가 넘었던 모릿재를 바라본다. 그리곤 몸을 돌려 떠나는 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흩뿌리는 청심의 섧은 사랑을 본다.

눈발은 서서히 가늘어진다. 지금쯤은 바위로 환생한 두 사람의 사랑도 무르익을 시간이다.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으로 내린 눈이 다 녹기 전에 청심대를 떠나야 한다. 여행자가 감당해야 할 몫은 그것뿐이다.
  2007-03-13 09:5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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