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구룡령(九龍嶺)

浮石 2008. 6. 3. 10:11

 

 

 

 

백두대간에서 가장 울울창창한, 설악과 오대산의 허리를 넘는 고개가 있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넘는 구룡령이다. 고갯마루 인근에서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이 높은 고갯길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56번 국도가 지난다.

 

 

 

이 구룡령 한쪽 자락에 옛길이 숨어있다. 일제에 의해 신작로가 뚫리기 전, 수 백년 넘게 옛사람들이 넘나들었고 등짐을 진 조랑말과 혼인 가마가 넘었던 좁은 오솔길, ‘구룡령옛길’이다.

백두대간 그 험한 지형, 급경사의 비탈에 놓여졌음에도 길은 한없이 부드러워 오르내리는데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이리 휘고 저리 휘며 최대한 경사를 누여 만든 보드라운 흙길에서 길을 만들어낸 선인들의 지혜와 그 축적된 시간이 느껴지는, 너무나 살가운 길이다. 산 정상을 목표로 하는 등산로와 달리 숨을 헐떡이게 하는 계단 대신 빙그르르 둘러가는 여유가 있다.

구룡령(56번국도) 정상 휴게소 건너편 도로변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면 ‘조침령 21km(10시간)’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 산길은 백두대간 등산로다. 30분쯤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구룡령옛길 정상’이란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 갈천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구룡령옛길이다.

이 옛길 정상에 산신당이 있었다고 한다. 갈천마을의 엄익환(71) 이장은 “이 고갯길은 산사람들이 피나무 껍질을 벗겨놓으면 바닷사람들이 그물에 댈 다줄(밧줄의 강원도 사투리)로 필요한 그 껍질을 구하러 미역과 생선을 이고 넘던 고갯길이고, 영동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향했던 과거길이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치르러 가다 이곳에 있던 산신당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하지 않으면 반드시 낙방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했고 “유순한 이 길로 홍천 내면에서 가마를 타고 온 새색시(이젠 환갑을 넘긴 할머니)가 아직도 갈천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옛길로 접어 내려가면서 ‘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고 실감한다. 찬바람을 맞으며 혼자 걸어도 휘파람 절로 나오고 흥으로 어깨를 들썩여진다. 구룡령의 단풍은 바닥으로 물들었다. 색색의 낙엽이 이룬 꽃 그림에 시선은 자꾸만 밑으로만 향한다.

이리 휘고 저리 휘어진 길. 마치 봅슬레이 경기장처럼 둥글고 깊숙한 홈이 파인 듯 길은 벼랑을 휘돌아 내려간다. 얼마나 오래 길이 다져졌는지 깊은 곳은 한길 깊이로 쑥 들어가 있다. 나뭇가지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떨고있는데 깊숙한 길에 들어서있는 내 몸에는 그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천연의 참호다.

내리막길 중간에 횟돌반쟁이, 솔반쟁이 등이 표시된 안내판을 만난다. 횟돌반쟁이는 산소를 모실 때 땅을 다질 때 쓰는 횟가루를 이곳의 돌에서 채취했다고 붙여진 곳이다. 솔반쟁이는 아름드리 쭉쭉 뻗은 금강송 군락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 그 주변에는 베어진 등걸만 있지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이질 않는다.

1990년대 후반 경복궁을 복원한다고 산림청문화재청이 ‘짝짝꿍’ 해서 주민들 몰래 베어갔다고 한다. 엄 이장은 “일제 때도 주민들이 나서 벌목을 막았던 귀중한 소나무였다. 진작 알았더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수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심마니인 엄씨에게 이 옛길은 열세 살 때부터 어른들 좇아 삼을 캐러 다니고, 매년 음력 8월이면 산신당에 제사를 지내러 올랐던 길이다. 그는 “6ㆍ25때 피란길로 삼았던 길도 바로 이 구룡령옛길”이라고 했다. 이 길은 엄 이장과 갈천마을 130여 주민들에겐 소중한 추억이었고 삶의 기록이었다. 그들의 꾸준한 복원 노력 덕분에 구룡령옛길은 지난해 말 다시 열렸다.

시누대 숲을 지나 길이 끝나고 신작로 구룡령길에 나서면 아담한 갈천분교(폐교)가 있다. 구룡령 정상에서 마을까지 내려오는데 1시간30분~2시간 가량 걸린다. 갈천마을의 갈천약수는 근방의 불바라기, 방동, 개인약수에 못지않은 효험을 지닌 물이다. 이 물맛을 찾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유명 약수다. 마을에서 800m 가량 걸어 올라야 한다


갈천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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