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 홍랑]
가련을 떠나와 함관령을 올라가니, 계절은 어느덧 4월이건만, 기후가 어떻게나 차가운지 평지에서는 진달래가 핀지 오래건만, 함관령 꼭대기에서는 이제야 겨우 피기 시작하였다. 김삿갓이 고생스럽게 함관령을 넘어 홍원읍에 도착하였지만, 천하의 명승들을 두루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김삿갓의 눈에 홍원 팔경은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었다. 경치보다도 오히려 마음이 끌리는 것은 명기 홍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홍랑이 경성(鏡城)에서 기생 노릇을 하고 있을 때, 최경창이란 사람이 함경평사로 경성에 부임해 오자, 홍랑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홍랑의 청초한 성품과 뛰어난 재기(才氣)를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고, 홍랑은 홍랑대로 최경창의 고매한 인격과 활달한 기개를 진심으로 존경해 왔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할까, 최경창이 서울로 떠나가게 되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철석같이 기약하였다. 그리고 홍랑은 최경창을 배웅하기 위해 경성에서 자기 고향인 홍원까지 따라 왔었다. 그리하여 함관령 고개 위에서 마지막 작별을 나누게 되자, 홍랑은 그리운 사람에게 버들가지 하나를 꺾어 올리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어 보였다.
묏버들 가려 꺾어 님의 손에 보내노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곳 나거든 나인 줄로 여기소서.
최경창은 그 시조를 듣자, 이별의 비애로 가슴이 메어져 오는 것만 같았다. 홍랑의 눈물 겨운 슬픔이 너무도 애절하게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최경창은 그 시조를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한시로 옮겨 놓아 놓기까지 하였다.
折楊柳寄與千里人(절양유기여천리인) 爲我試門庭前種 (위아시문정전종) 須知一夜新生葉 (수지일야신생엽) 樵悴愁眉是妾身 (초췌수미시첩신)
많이 접해본 시이긴 해도 이런 곡절이 숨어 있는 줄 몰랐다. 여자만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왠지 모를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있는 시다. 버들잎을 띄워 물을 천천히 마시게 하는 그런 지혜가 있고 버들가지를 꺾어 님에게 주는 간절한 사랑이 있는데 요즘은 버들잎을 띄워주면 공해에 찌든 잎 때문에 물이 더러워지고 버들가지를 꺾어 줘도 그걸 심을 한줌 흙도 없이 사는 우리다. 허나 마음 만은 풍요롭게 살자.. 한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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