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平,旌 이야기

정선으로 떠나는 웰빙 여행

浮石 2007. 3. 14. 20:52

정선으로 떠나는 웰빙 여행

태백산맥의 준봉 사이를 헤집고, 끊어질 듯 이어진 길을 따라 정선으로 흘러든다. ‘산첩첩, 물중중’, 강원도 두메의 겨울은 그리 황량하지만은 않다. 2월의 마른 볕이 들어, 고산 준봉의 실루엣이 빛난다.

도착하니, 주인보다 먼저 3280개의 항아리가 객을 반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독마다 간장과 된장이 가득하다.

"42년 전에 담근 간장이 있어. 20년 전에 담근 된장도 있고. 오래된 장을 적당히 섭취하면 최고의 해독제가 된다니까. 옛날에는 울화를 식히기 위해 물에 간장을 타서 마시기도 했잖아."

된장마을의 안주인 도완녀 씨의 말이다. 판매용으로 팔리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간장은 18년 된 것, 된장은 8년 된 것이란다. 물론 지난해에 담근 장도 있다. 각 항아리마다 담근 날짜가 표시돼 있다. 항아리에 겨울 햇빛이 가득 고인다. 설을 앞두고 간장과 된장이 푹푹 익어간다.

"차나 한 잔 마시지." 안주인이 손목을 잡아끌며 다실(茶室)로 이끈다. 다실에는 대여섯 개의 찻상이 놓여있다. 그 위에 다기가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았다. 열린 다실이다. 누구라도 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다. 녹차의 온기 덕택에 몸이 녹는다. 몸이 녹으니 말문이 트이고, 말문이 트이니 마주 앉은 사람과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그녀는 ‘그래서 다실을 만든 거’라 한다. 마당의 항아리가 다실의 창에 비친다. 까만 독이 하얀 눈과 잘 어우러졌다. 창의 여백은 주렁주렁 달린 메주가 메운다.

된장마을에 퍼지는 첼로 선율

알려진 대로 도완녀 씨는 첼리스트, 돈연은 스님이다. 두 사람은 1975년 독일문화원에서 함께 수업을 들으며 연을 맺었다.


1993년, 처음 그녀가 시집올 때의 항아리 수는 60개 남짓. 돈연이 된장 팔아 마을 사람들 부자 되게 만들겠다고 채운 것이었다. 그녀가 시집 온 후 14년이 지난 지금 그 수가 무려 50배 이상 늘었다.

"예까지 왔으니 첼로 연주 한번 들어봐야지." 이번에는 항아리가 도열한 앞뜰로 따라오란다. 항아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첼로를 살포시 보듬는다. '그리운 금강산'이 항아리들 사이로 울려 퍼진다. 청명한 하늘만큼, 첼로 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원한다면 한두 곡 정도 연주해준단다. 결혼기념일인 매년 7월 6일에는 첼로 연주회도 갖는다.

내친김에 마당 뒤쪽에 있는 잣나무 숲도 구경시켜 주겠단다. 약 500m 길이의 산책로가 잘 닦여 있다. 산책로는 '여래의 길'이라 이름 붙었다. 자식들은 부처의 이름을 따 여래(14), 문수(12), 보현(11)이라고 지었다. 그녀는 "여래 낳고 만든 길이야"한다. 겨울에도 숲은 푸르고, 울창하다. 도중에 한 무더기의 놋쇠 밥그릇을 만난다. 스트레스 해소용이란다.

숲에서 하는 독특한 '웰빙 프로그램'

된장마을은 최근 단체 여행객을 상대로 '웰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차 마시고, 숲에서 운동하고, 소원을 적은 쪽지를 나뭇가지에 매달기도 하고, 때로는 놋쇠 밥그릇을 두드리기도 하는 이색 프로그램은, 숲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놋쇠 그릇들 중 찌그러지고 깨진 것이 여럿 눈에 띈다. 봄이 되면 된장마을 만의 독특한 식사 한 끼도 준비하고 있다. 4~5월이 되면 숲에서 '항아리 뚜껑 정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보일 생각이다. 된장 항아리를 덮어놓은 뚜껑에 각종 나물반찬 등을 담아 뷔페식으로 내 놓는 것. 도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그래서 잔뜩 기대되는 메뉴다.

된장마을 근방, 가까운 곳에 작은 여울을 만난다. 초여름, 철쭉이 피면 시내는 더욱 아름답다. 시냇가에 '완녀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남편이 그녀의 이름을 따 붙인 것. 이곳에서 그녀는 매년 연주회를 연다.

"된장과 음악은 똑 같은 거야. 둘 다 인내를 필요로 해. 급한 마음에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장맛이 안 살지. 음악은 원래 끝이 없는 것이고. 둘 다 기다림의 연속이야."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녀는 앞으로 근처에 '웰빙센터'를 짓고 싶단다. 그녀가 구상한 웰빙센터에선 된장과 쑥을 이용해 찜질과 마사지를 하고, 춤과 좌선, 걷기 등을 통해 명상을 하고, 스파를 하며 육체와 정신의 긴장을 풀 수 있다.

웰빙센터를 짓기 위해 더 열심히 장을 담가야 한다. 내년 착공이 목표다. 이제 곧 설이다. 구수한 장맛 보고 훈훈한 덕담 들으니 설 기분 난다.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니 기분 좋다.

약수 한 모금, 콧등치기 국수 한 사발

된장마을을 내려와 정선으로 간다. 동면(東面)에는 화암약수가 있다. 철분 농도가 진한 탄산수다. 위장병가 피부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약수다.


1913년, 문명부라는 사람이 부슬봉 동자 바위 아래에서 청룡과 황룡이 서로 얽히고설키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이후 이곳으로 와 땅을 파니 약수가 솟았다고 전해진다.

물맛은 계피가루를 탄 듯 씁쓸하면서도 사이다처럼 톡 쏜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장마에도 솟는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약수터까지는 약 1.5km. 차로 갈 수 있지만 걸어가는 게 좋다. 길이 잘 닦여 있는데다, 시원한 바람, 쾌청한 공기를 마시는 일이 도시에선 드물 테니까 말이다.

정선에 왔으니 '콧등치기 국수'로 빼놓을 수 없다.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를 써서 만든 국수다. 밀가루 면에 비해 면발이 쫄깃해, 면을 '후루룩'하고 빨아들이면 면발 끝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겹다.

걸쭉한 메밀육수는 겨울에도 별미다. 봄이 되면 산채정식도 맛있는 '웰빙 먹거리'가 된다. 곤드레나물을 넣고 지은 곤드레나물밥도 정선의 대표적 '웰빙 음식'이라 하겠다.

황기로 만든 족발도 별미다. 정선역 근처의 동광식당은 황기족발의 '원조'로 올해로 27년이나 됐다. 생황기를 넣어 삶는 것이 특징이다. 황기가 족발의 누린내를 말끔하게 없애준다. 육질도 쫄깃하고, 기름기도 덜 느껴진다. 정선의 옥수수 막걸리를 곁들이면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푸짐한 '술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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