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덕수궁(德壽宮)

浮石 2014. 11. 4. 07:00

 

대한문 안쪽

덕수궁(德壽宮)의 정문으로 1904년(광무 8년)에 소실되고 1906년 중건된 목조로 소실전에는 대안문(大安門)이던 것을 1906년 7월 15일 중건시 대한문이라 개칭하였다. 서울시 도시계획에 의한 제2차 도로확장 공사시 담장만을 궁내로 이전하여 도로상의 한복판에 분리 폐쇄되어 있다가 1970년 8월 21일 현 위치로 이설 공사를 착공하여 1971년 1월 2일 준공을 보았다.
200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석조전앞 분수대

 

덕수궁 미술관(등록문화재 제81호)

 

1938년 3월 일인의 손에 의해 건축하여 이왕가 박물관 소장품을 진열하던 곳. 석조 건물로 1936년 8월 21일 기공하여 1938년 6월 5일 준공 됨,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덕수궁 미술관으로 사용중임

 

덕수궁 연못

덕수궁 연못 수련 위에 떨어진 낙엽이 쌓이고 있다

 

사적 제124호.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것으로 조선말 고종이 살던 곳이다. 궁궐의 자리는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직후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행궁(行宮)이 되었다.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한 뒤 1611년 10월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615년(광해군 7)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 궁궐이 되었으며 1618년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면서 서궁(西宮)으로 불렸다. 인조는 이곳 별당에서 즉위했으나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다시 빈 궁궐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왕태후와 왕태자비가 이곳으로 옮겨와 생활했으며 1897년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궁궐건물의 건립이 이루어졌다. 그해에 역대 임금의 영정을 모시는 선원전(璿源殿), 침전인 함령전(咸寧殿), 보문각(寶文閣) 등이 지어졌으며 9월 17일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하고 소공동의 원구단(圜丘壇)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정궁(正宮)이 되었다. 1900년(광무 4) 담장공사가 완공되었고 정문인 인화문(仁化門) 및 돈례문(敦禮門)·회극문(會極門)·영성문(永成門) 등의 전문(殿門)이 완성되었다. 그해에 선원전이 불탔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中和殿)과 관명전(觀明殿) 등이 새로이 건립되었으며 1904년 대규모 화재로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으나 즉조당(卽祚堂)·석어당(昔御堂)·함령전 등이 중건되었다. 이때 정문의 이름을 대안문(大安門)이라 했다. 1905년 중화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되었으며, 이때 대안문도 수리하여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고 이곳에 살면서 현재의 이름인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순종이 이곳의 즉조당에서 즉위한 뒤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고종의 거처가 되었다. 1910년 근대건물인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전(石造殿)이 건립되었으며, 1919년 고종이 함령전에서 죽었다. 1921년 중화전에 봉안했던 고종의 영정을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중앙에 정전인 중화전이 남향하여 있고 정전의 뒷편에는 석어당과 즉조당이 있으며, 정전의 동편에 침전인 함령전이 있다. 함령전의 서쪽에 덕홍전(德弘殿)이 있으며, 북쪽에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靜觀軒)이 있다. 정문인 대한문은 궁궐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전인 중화전의 주위에 회랑이 없어 다른 궁궐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현재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하여 중화문·함령전·즉조당·준명당(浚明堂)·석어당·덕홍전과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과 정관헌 등이 남아 있다. 서양식으로 세워진 석조전과 정관헌은 주변의 한식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건축양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특히 석조전의 남쪽에 일본인들이 미술관을 세우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을 만들면서 궁궐의 본래 모습이 상당히 손상되었다.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 있는 조선왕조의 궁궐로 본래 일반사가의 집을 궁궐로 꾸몄기 때문에 규모도 가장 작고 전체배치가 정연하지 못하다.

 

 

덕수궁은 원래 지금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세월의 부침을 겪어 오늘날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덕수궁 돌담길은 원래 덕수궁 영역의 일부였으나 일제에 의해 길이 생기면서 궁궐 영역이 확 줄어들게 되었다. 이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을 걷다 보면 중명전을 만날 수 있다. 수옥헌이라 불리던 이 건물 역시 궐내에 있던 건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도서관 건물이다. 조금 더 발품을 팔아 함께 둘러보자.

한양의 모든 궁궐이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머물 곳이 없던 선조가 월산대군가를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광해군의 즉위식을 올리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붙이고 왕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훗날,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고종이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근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소장하고 있는 조선의 마지막 황궁이다.

덕수궁에서는 다른 궁들과 달리 서양식 건축물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고종이 연회를 베풀던 정관헌이나 우리나라 최초의 유럽식 정원과 분수대를 갖추고 있는 석조전은 모두 외국인 건축가가 지은 것이다. 특히 석조전은 2004년 2월 동관과 서관이 각각 등록문화재 제80호와 81호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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