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越 이야기

심일공원

浮石 2014. 12. 2. 07:00

 

 

 

 

심일(沈鎰, 1923년 6월 5일 ~ 1951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 육군 장교 한국 전쟁 초기 대전차포 소대를 이끌고 적 자주포를 격파하여 조선인민군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故 심일 소령은 6·25 전쟁 당시 제6사단 7연대 대전차포 2소대장으로 북한군 자주포를 수류탄과 화염병만으로 제압하는 등 국군의 한강 방어선 구축과 유엔군 참전 시간 확보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이후 충북 음성지구 전투, 경북 영천 304고지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1951년 강원 영월지역 전투에서 28세 나이로 산화했다. 

 

함경남도 단천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수료하고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 1949년 5월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춘천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및 홍천 전투에서 당시 제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으로 남하하는 조선인민군의 SU-76 자주포가 아군의 대전차포를 맞고도 포탄을 쏘아대며 계속 전진해오자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공격을 감행한 끝에 조선인민군의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전공 사실은 순식간에 전군에 전파되어 조선인민군의 전차 및 자주포에 대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으며 모든 전선에서 육탄공격으로 적의 전차를 파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울러 그의 영웅적인 행동은 개전 초기 조선인민군의 남진을 지연시켜 대한민국 국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국제연합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 공로로 소위에서 중위로 1계급 특진되었으며, 이후도 충청북도 음성군, 경상북도 영천군 등지의 전투에서도 참전했다가 1951년 1월 26일 제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강원도 영월군에서 조선인민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

사후 1951년 7월 26일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9호)이 수여되었고, 11월 11일 소령으로 추서되었다.[1] 1954년 6월 12일에는 미국 육군 은성훈장이 추서되었다.[2]

그 뒤 그의 생도 시절 교관이었던 손희선(孫熙善) 육군대학 명예교수 등의 주도로 그가 전사한 곳인 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위령비가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육군은 심일 소령의 군인정신과 유훈을 기리기 위해 2002년 심일상을 제정하였다. 이는 군단 단위 전투부대 중대장 가운데 탁월한 리더십과 지휘통솔력을 발휘한 우수장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2003년부터 매년 심일 소령이 전사한 1월 26일에 시상하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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