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피맛골

浮石 2016. 3. 3. 08:27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종로를 지나다 말을 탄 고관들을 만나면,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서민들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길 양쪽에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다니는 습속이 생겼는데, 피맛골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서민들이 이용하다 보니 피맛골 주위에는 선술집·국밥집·색주가 등 술집과 음식점이 번창하였다. 원래는 현재의 종로구 청진동()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이어졌으나, 지금은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로, 지금도 길 양쪽에 해장국·생선구이· 낙지볶음· 빈대떡등을 파는 식당과 술집·찻집이 밀집해 있는 종로의 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1980년대 초 도심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뒤, 2003년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을 허가함에 따라 청진동 166번지 일대(청진 제6재개발사업지구)부터 건축공사가 시작되었다. 2004년 1월 공사 현장에서 조선시대 건축물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장대석() 10여 점과 기와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문화재청이 같은 해 4월부터 신축공사터 2,600여 평을 시굴·조사한 결과 주춧돌· 적심(: 주춧돌 주위에 채우는 보강용 돌무더기)·다짐층 등 건물터 흔적과 도자기 조각 등의 추가 유물을 발굴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골목의 일부가 재개발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도 재개발이 이루어졌다. 2009년 청진동 재개발로 600년간 서민의 애한이 서린 피맛골은 추억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으나 서울의 전통 거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재기되었다. 이에 기존 개발된 지역을 제외하고 종로2가에서 종로6가에 걸쳐있는 피맛골은 수복재개발구역으로 지정하여 예전 피맛골의 모습을 재현하기로 하였다.



피맛골 연가


철거와 재개발 공사를 앞둔 종로의 피맛골. 이제는 둥치만 남은 살구나무. 거기에 깃든 살구나무의 혼령인 행매가 눈을 뜬다. 내일이면 뿌리째 뽑혀 사라질 신세. 행매는 오랫동안 피맛골 어귀에 서서 보았던 것들,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중에도 참 속절없던 김생과 홍랑의 인연을 생각한다. 조선시대 한양 운종가 뒷골목 ‘피맛골’에 김생이란 자가 있었다. 서자 출신인 김생은 늦도록 장가들지 못한 채, 골목 어귀 살구나무 주막 뒷방 한 칸을 얻어 홀로 지낸다. 뛰어난 학식과 글재주를 지녔지만 타고난 신분 때문에 제 뜻을 펴지 못하고 떠돌던 김생은 피맛골에 들어와 골목 안 사람들의 대소사를 돌보아주고 그들의 호의 속에서 함께 지낸다. 어느 날, 김생은 친구를 돕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고 대리시험꾼 노릇을 하게 된다. 김생이 대신 시험을 쳐 준 안국방 홍생은 과거에 장원급제한다. 홍생은 유가행렬 도중 길을 막는 피맛골 살구나무를 베려 한다. 김생은 홍생의 오만함에 분을 참지 못하고 나서 자신이 홍생 대신 과거를 치른 사람임을 밝히며 그를 비웃는다. 격노한 홍생은 김생을 미치광이로 몰아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 한다.


홍생에게는 아리따운 여동생 홍랑이 있다. 홍랑은 오빠 몰래 광에 갇혀 있던 김생을 꺼내어, 자신의 별채에 숨겨두고 그를 돌본다. 홍생은 도망친 김생을 찾아 도성 안을 뒤지지만, 제 동생 홍랑이 그를 숨겨두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별채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홍랑과 김생은 서로에게 점점 이끌리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홍랑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오빠 홍생의 뜻에 따라 권문세가에 시집을 가야 할 처지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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