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성산일출봉

浮石 2016. 4. 27. 06:00


성산출일(城山出日) : 성산 일출봉에서 동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는 장관을 말한다.


성산 일출봉은 제주도의 동쪽 끝 바닷가에 위치한 한 개의 바위덩어리로 된 산이다. 해발 182m 높이의 이 산은 바다 가운데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이루면서 정상은 99봉우리의 암벽으로 성곽처럼 둘리워졌다.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긴 분화구가 하나의 분지를 형성한 것이다. 이 성산 일출봉 꼭대기에 올라서 바다의 해돋이를 보면 둥근 불덩어리가 수평선이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나 꿈틀거리면서 다가오는 것 같은 장엄한 감동을 안겨준다.

바다 건너 북쪽에는 우도가 있고, 남쪽으로는 신양해수욕장, 협자연대 그리고 탐라(耽羅)의 고(高), 양(良), 부(夫) 세 신인(神人)이 벽랑국(碧浪國) 삼공주를 맞이하여 결혼했다는 온평리 바닷가와 혼인지로 이어진다.

높이 182m, 넓이129,774㎡ 의 분화구를 가진 한 덩이 왕관과 같이 암석으로 짙푸른 바다 위에 놓여있다. 분화구는 동서 450m, 남북350m의 둥근형태이며 99개의 크고 작은 바위로 둘러쌓여 있고 깊이는 100m에 이르고 있으며, 등경돌, 초관바위, 곰바위, 독수리바위, 거북바위 등 크고 작은 바위가 많이 있다. 분화구 안에는 풍란, 야고, 부처솔, 사철쭉, 갯장대 등 희귀식물 150여종이 분포되어 있으며 2000년 7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 420호로 지정 되었고 2007년 6월 27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성산일출봉의 생성은 분명히 밝혀진 것은 없으나 일출봉의 기저를 이루는 현무암의 분출 시기나 주변 신양리 퇴적층의 형성시기, 분화구의 원형 보존상태 등으로 미뤄 한라산이 만들어진 이후 대략 10만년전 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표소에서 정상까지는 25분정도 소요되며, 아침 일찍 가벼운 마음으로 정상에 올라 희망과 함께 솟는 성산일출은 영주10경중 제1경으로서 그 유명세 만큼이나 변덕스런 날씨로 해돋이 장관을 보는 일이 쉽지 않다.


해발 180m인 성산 일출봉은 약 5,000년전 제주도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얕은 바닷가에서 폭발하여 만들어진 화산체이다. 뜨거운 마그마가 물과 섞일 때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마그마와 주변 암석이 가루가 되어 쌓여 일출봉이 만들어 졌다. 화산학적 조사결과 성산일출봉은 총 3번에 걸친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최초의 분출은 현재 분화구의 동쪽에서 일어났고, 이후 두 번의 분출은 현재 일출봉 분화구에서 발생하였다. 일출봉이 형성될 당시에는 육지와 분리된 섬이었지만, 화산재 모래로 구성된 지층은 파도에 쉽게 깎여나가 광치기 해안에서 신양해수욕장까지 쌓여 육지와 연결되게 되었다. 

용암이 물에 섞일 때 일어나는 강력한 폭발로 용암은 고운 화산재로 부서져 분화구 둘레에 원뿔형으로 쌓여 있다. 원래는 화산섬 이었지만 신양해수욕장 쪽 땅과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여 육지와 연결이 된 것이다.


일출봉 정상에는 직경 약 600m, 바닥면의 높이 해발 90m에 면적이 약 21.44ha나 되는 사발모양의 분화구가 자리한다. 이곳에서 이장호 감독의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한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농사를 짓기도 했는데 지금은 억새를 비롯한 넝쿨이대당귀등 200여종의 많은 식물과 꿩등 다양한 동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북쪽에 우도와 남쪽에 섭지코지 서쪽에 식산봉 두산봉 지미봉 등이 일출봉을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예부터 이곳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은 영주10경(제주의 경승지) 중에서 으뜸이라 하였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저편 수평선에서 이글거리며 솟아 오르는 일출은 온 바다를 물들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케 한다. 지방기념물로 관리하다 2000년 7월 1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었으며, 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7월 2일 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등재에 이어, 2010년 10월1일 UNESCO 세계지질공원에 인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2011년도 대한민국 자연생태관광 으뜸명소, 2012년 12월 한국관광기네스 12선에도 선정되었다.


성산일출봉도 오름이다. 제주 오름 368개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러나 성산일출봉이 지닌 의의와 가치는 낱개의 오름에 그치지 않는다. 성산일출봉은 숱한 전설과 신화가 전해오는 성지이자,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 제주도 여행자라면 누구나 성산일출봉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성산일출봉의 전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산일출봉의 원래 이름은 성산(城山)이다. 문자 그대로 산이 성처럼 서 있어 성산이다. 조선 중기 문신 김상헌(1570∼1652)도 “산성 같은 자연(自然如山城)”이라고 성산일출봉을 묘사한 바 있다. 성산이라는 마을 이름도 이 오름에서 비롯됐다.


옛날에는 청산(靑山)이라고 불렸다. 지금은 푸른 색이 많이 바랬지만 성산일출봉 기슭에 동백나무가 무성했던 시절에는 푸른 산처럼 보였다고 한다. 성산일출봉 남쪽 바다의 작은 섬은 아직도 ‘새끼 청산’이라고 불린다. 요즘에도 성산을 청산이라고 부르는 제주 어르신이 있다. 청산 아랫도리를 구름이 두르며 바다가 험해져 고깃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성산일출봉에 한쪽 발을 대고 오줌을 눴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제주도 명승 열 곳을 열거한 영주10경의 제1경이 성산출일(城山出日)이다. 제주도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장관이 성산에서 떠오르는 해라는 말이다. 그 유명한 일출 장면 덕분에 성산이라는 이름에 일출봉이 붙었다. 한동안 일출봉으로만 불리다 최근에는 성산일출봉으로 통일됐다.


성산일출봉의 높이는 해발 182m이고 둘레는 2927m다. 그러나 훨씬 훤칠하고 우람해 보인다. 제주도 동남쪽 모서리의 해안 끄트머리에 거칠고 험한 바위산이 뜬금 없이 솟아 있기 때문이다. 성산일출봉이 자리한 해안 모서리가 곶(串)처럼 비어나와 있어 언뜻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애초의 성산일출봉은 섬이었다. 성산일출봉이 생성된 5000년 전에는 뭍과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한 섬은 아니었다. 뭍의 고성리와 성산일출봉을 품은 성산리 사이의 바다가 얕아 성산일출봉은 물이 빠지면 뭍이 됐고 물이 차면 섬이 됐다. 1920년대 일제가 바닷물 드나들던 물길을 메우면서 온전한 뭍이 됐다. 옛 물길이 있던 자리를 ‘터진목’이라고 부른다. 터진목을 경계로 동쪽에 성산리가 있고, 서쪽에 오조리가 있다. 남쪽 마을은 고산리다.


성산일출봉은 단박에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 생김새가 워낙 독특하기 때문이다. 가장 특이한 지형이 정상부다. 성산일출봉은 정상에 봉우리가 없다. 대신 지름 600m의 분화구가 쩍 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지만 몸통 부분은 각진 바위가 서 있다. 그래서 하늘에서 보면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봤음 직한 우주기지가 떠오른다. 당장에라도 분화구가 양 옆으로 벌어지며 우주선이 솟구칠 것 같다. 테두리가 뾰족한 동그라미 모양을 보고 신라 왕관을 연상하는 사람도 많다.


성산일출봉은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보면 원형이지만 서쪽에서 바라보면 사다리꼴과 유사한 도형을 그린다. 동쪽 바다 건너 우도에서는 바다를 향해 달려드는 코뿔소처럼 보이고, 서쪽 광치기해변이나 신양해수욕장 쪽에서는 사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디에서 바라보든 성산일출봉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김상헌이 ‘신선의 피서지’라고 표현한 까닭이다.


성산일출봉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이승훈(55) 성산읍장에 따르면 성산일출봉의 연 입장객은 300만 명이 넘는다. 이 중에서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입장권을 끊지 않고 멀찍이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는 관광객도 많다. 그러나 이 익숙한 사진에는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제주도는 성산일출봉 덕분에, 정확히 말해 성산일출봉의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될 수 있었다.

‘성채 모양의 성산일출봉은 벽면이 해양 밖으로 솟아나와 극적인 풍경을 연출하면서 그 구조 및 퇴적학적 특성이 드러나 있는 드문 경우로 화산 분출을 이해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 지구상에 이런 예가 몇 있지만 … 성산일출봉은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침식작용의 이해를 명백히 도와준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120∼121쪽.


성산일출봉은 바다에서 분화한 화산이다. 바다에서 폭발한 그 자리에서 굳은 화산을 수성화산이라고 한다. 수성화산이 바다와 만나는 벽면이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깎여나가 화산의 속살을 훤히 드러낸 꼴이 지금의 성산일출봉이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하여 성산일출봉의 가치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면 배를 타고 남쪽 바다로 나가야 한다.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팬 암벽이 바짝 각을 세운 채 서 있고, 암벽 위로는 분화구 테두리를 따라 짐승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이 줄지어 있다. 옛 기록에는 성산일출봉 분화구 테두리를 따라 솟은 암봉이 99개나 된다고 적혀 있다.

성산일출봉에도 제주도의 아픈 역사가 배어 있다. 제주도까지 쫓겨 내려온 삼별초가 성산일출봉에서 진지를 구축했고(삼별초 김통정 장군의 전설이 내려온다), 몽골이 직접 통치했던 고려시대 100년 동안은 성산일출봉 주변 초원이 말을 키우는 목장으로 쓰였다. 성산일출봉에도 일제 진지동굴이 있다. 모두 18개가 확인됐는데, 일본군이 폭탄을 실은 보트를 동굴에 숨겼다고 한다. 서쪽 아랫도리 수매밑이라 불리는 포구 터를 지나면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진지동굴이 보인다. 4ㆍ3 사건의 상처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성산일출봉 동쪽 우묵개 동산과 터진목 등지에서 민간인이 집단으로 학살당했다.

성산일출봉은 손꼽히는 일출 명소이지만, 막상 정상에 오르면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한 정상 전망대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분화구 능선에서 90m 아래에 있는 분화구 바닥도 내려가고 싶고, 직선거리로 600m 떨어진 바다 쪽 분화구 능선에도 서 보고 싶지만 모두 금지돼 있다. 전망대도 크지 않다. 새해 첫날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일출을 맞을 수 있는 인원이 1500명으로 제한된 까닭도 전망대가 한꺼번에 1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산 출신인 한천복(65) 문화관광해설사가 옛 기억을 더듬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분화구 바닥에서 사람이 살았어요. 말도 키우고 소도 키웠어요. 절벽을 타고 내려가기도 했어요. 가마우지를 잡기도 하고 풍란을 뜯기도 했는데…. 다 옛날 얘기지요.”
성산은 시작과 관련이 많은 마을이다. 성산읍에 시흥리(始興里)라는 마을이 있다. 제주도에 목사(牧使)가 부임하면 일부러 시흥리까지 와서 섬의 고을을 순찰하는 순력(巡歷)을 시작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제주올레가 1코스를 시흥리에서 시작한다. 제주 창건 신화에 등장하는 3대 시조가 아내를 얻은 혼인지도 성산읍 온평리에 있다. 앞서 적었듯이 영주10경의 제1경이 성산일출봉이다.


무엇보다 성산일출봉은 제주도 본섬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오름이다. 다시 말해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아침 해를 볼 수 있는 명당이다.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기에 성산일출봉만 한 곳도 없다는 뜻이다.
성산일출봉은 입장료가 있다.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입구에서 정상까지 30분 가까이 걸린다. 성산일출봉 왼쪽 아래 우묵개에서 하루 2차례(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해녀 물질공연이 열린다. 무료. 우묵개에서 성산리 주민이 보트 투어를 운행한다. 1인 1만원.

성산일출축제(sunrisefestival.kr)가 오는 30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불꽃놀이ㆍ강강술래ㆍ푸드트럭ㆍ떡국시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31일에는 이튿날 아침까지 밤새 행사가 진행된다. 선착순 1500명만 1일 아침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일출을 맞을 수 있다. 성산일출축제위원회 064-760-4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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