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연이란 옛날 옥황상제를 모시는 일곱 선녀들이 밤중에 목욕하러 내려온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하느님의 연못`이란 뜻이다. 천제연의 제1폭포는 높이 22m, 수심은 21m, 여기에 떨어지고 떨어진 물이 다시 흘러 제2폭포가되어, 30m의 폭으로 전면낙하하는 장엄함을 연출하고 있다.
이 폭포 위쪽에 있는 아치형의 선임교(일명 칠선녀교, 오작교형태를 따서 만들었다)에서 바라보는 천제연 폭포는 더욱 장관이다. 천제연의 단애와 그 밑의 점토층 사이에서 용천수가 솟아나와 사시사철 물이 맑으며 제1폭포의 동쪽에 있는 동굴천정에서 떨어지는 여러 갈래의 차가운 물줄기는 석간수여서 식수로도 사용되며 예로부터 백중과 처서에 이 물을 맞으면 만병통치가 된다고 전해진다. 바로 옆에 여미지 식물원이 있고 주변에 여러 관광지를 동시에 구경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편이다.
중문마을 서쪽에는 아름다운 폭포 천제연이 있다. 이 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이 동네에 한 농부가 살았는데, 결혼을 한 지 십여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어 무척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밤이면 밤마다 이 천제연에 찾아와서, 그 깨끗하고 맑은 물에 목욕한 후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두어 달 후에 부인은 아기를 가졌고 열달 후에 부인은 옥동자를 낳았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서당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재주가 비상하여 "천자문"에서 "사서삼경"에 이르기까지 남보다도 빨리 깨쳤을 뿐 아니라, 행실이 얌전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그의 부모는 물론 이웃 마을에서도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런데 정말 불행한 일이 닥쳐왔다. 그가 열 일곱 되던 해에 아버지가 이름도 모를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청년이 된 아이는 책을 던져 놓고 장사를 지낸 후에도 아버지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죄인처럼 삼 년을 지내다가, 삼년상을 지낸 후에야 내려와 다시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의 나이 스물 두 살 되던 해에 그는 서울로 올라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불행히도 낙방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다시 그에게 생각하지 못한 불행이 뒤따랐다. 그의 어머니마저 병으로 몸져눕더니 그만 눈이 멀고 말았다. 그는 글공부를 그만두고 오직 어머니 병간호에만 정성을 다하였다.
그는 동이 트기 전부터 천제연으로 나아가 바위 위에 꿇어앉아서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열흘이 지나고 스무날이 지나도 기도는 계속되었다.
낮에는 정성으로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 효험이 있다는 약은 백 리를 걸어가서도 구해다 드리고, 새벽이면 이 천제연 폭포 앞에 꿇어 엎드리어 기도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기도 드리기를 눈이 오나 비바람이 몰아치나 하루도 쉬지 않고 삼년을 계속하였다.
하늘에서도 그 기도를 들어서 어미의 병을 낫게 해주고 글에만 뜻을 두지 말고 그 글을 직접 행하는 일에 마음과 몸을 바치라고 음성을 남긴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데 청년은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이제부터 글공부를 그만두고 자기의 할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로부터 청년은 과거를 보려던 글공부를 그만두고 스스로 착한 일을 찾아 하면서 살기 시작하였다. 남이 싫어하는 일을 혼자하고, 아이들이나 글 모르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어려운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고, 심지어는 사소한 싸움에까지 끼어들어 화해를 시켜 주었다.
그는 정말 어린 아이와 같이 어떤 때는 바보와 같이, 어떤 때는 성난 말과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부지런히 살아 나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따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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