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156번길 293
봉인사는 봉선사의 말사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봉선사본말사지》에 따르면 조선초에도 있었다고 한다. 1619년(광해군 11) 중국에서 부처 사리를 가져오자 이듬해 5월 광해군이 예관(禮官)에게 이 절에 석가법인탑(釋迦法印塔)과 부도암(浮圖庵)을 세우게 하였다. 1765년(영조 41)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풍암(楓巖:1695∼1766)이 이곳에 들러 석가법인탑이 낡은 것을 보고 왕실의 시주를 받아 중수하였다.
1887년(고종 24)에는 왕실에서 향과 촛대를 시주한 바 있으나 이 때 대웅전 안에 설치한 황촉등(黃燭燈)에서 불이 나 대법당과 응진전·시왕전 등이 타 없어졌다. 1907년 이후 인근 금곡(金谷)에 홍릉(洪陵)이 들어서자, 절 아래 동네에 사는 이천응(李天應)이라는 사람이 절 건물을 헐어서 건축자재로 팔고 절터와 임야를 모두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고 한다. 1925년에 주지 동파(東坡)가 절터를 되찾고 중수하였으나 다시 폐사가 되었으며, 1979년 한길로가 복원하였다. 1984년 법륜사 승려 덕암이 스리랑카에서 부처 사리를 가져와 봉인사탑을 세우고, 1999년 1월 24일 자광전을 새로 지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법당과 자광전·요사 등이 있다. 이 중 자광전은 3층으로 된 현대식 건물로 수련원으로 쓰인다. 유물로는 석가법인탑과 풍암대사부도가 유명한데, 풍암대사부도는 1979년 한길로가 절을 복원할 때 발굴한 것이다. 부도에 적힌 내용으로 석가법인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소재를 추적해서 오사카시립미술관 뜰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1983년부터 반환을 요청하여 1987년에 돌려받았다. 이 탑에서 발굴된 사리 장엄구 6점은 탑과 함께 보물 제928호로 지정되었다. 사리는 현재 봉인사에 있으나 탑과 사리 장엄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 봉인사의 볼거리 *
봉인사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큰법당, 봉인사부도암진신사리탑, 지장전, 자광전, 약사여래불과 1250 나한상, 풍암취우대사비, 삼성각, 부도, 청림다락, 관세음보살상, 불유각, 일주문, 대자월전, 극락보탑전, 연못, 약수터, 해탈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조용한 산사로 여행을 또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봉인사 큰법당
약사여래불
1250 나한상은 큰법당 앞으로 이전
1250 나한상
1250 나한상
봉인사부도암진신사리탑
이 사리탑은 1620년경 봉인사 부도암(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 송릉리 소재)에 세워졌던 것으로, 1927년 일본인에 의하여 고베(神戶)로 반출되고 그 뒤 대판(大阪)시립미술관에 보관되었다가 1987년 2월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사리탑이 세워진 동기는 조선시대 광해군의 왕세자에 대한 만수무강과 부처님의 비호를 함께 기원하는 뜻에서 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함이었다.
탑은 삼국시대 이래 일반적으로 쓰인 8角圓堂形 평면을 기본평면으로 삼았고, 기단은 상 · 중 · 하대를 갖추었으며 북(鼓)모양의 塔身 위에 8각지붕과 길쭉한 상륜(相輪)을 얹어 전통적인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中臺石에 새겨진 구름, 당초(唐草), 꽃잎, 如意頭무늬, 상대석 옆면 테두리 속의 당초무늬, 탑신부의 雲龍 무늬 등에서 새로운 조형적 특색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경사가 급한 지붕에 처마밑으로 서까래의 흔적을 남기고 윗면에 용머리를 새긴 수법이나 상륜부가 길쭉하게 올라간 형태, 그리고 왕릉의 護石처럼 주위에 난간과 궁판석을 돌린 방식은 이 탑이 곧 조선 초기에 제작된 중원의 靑龍寺의 사리탑이나 양주의 檜巖寺의 사리탑을 모방하여 조선 초기 사리탑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장전
관세음보살상
삼성각
삼성각
해탈공원
水然 朴喜璡 詩碑
박희진 시인
1931년 12월 4일 경기도 연천 출생. 보성중학을 거쳐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5년 『문학예술』에 시 「무제(無題)」, 「허(虛)」, 「관세음상에서」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오랫동안 동성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임하면서(1960~1983) 전후문학인협회 간사, 『60년대 사화집』(1961~1967)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박희진 자작시 낭송의 밤(신문회관, 1965. 10 28), 박희진 시미전(詩美展)(신문회관, 1968. 5. 18~22)을 개최하고, 1979년부터 공간시낭송회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삶과 존재, 예술과 예술작품, 이성간의 사랑, 기행, 시사적 현실 등 다양한 세계에 대한 시적 관심을 표현한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으로는 『실내악』(1960), 『청동시대』(1965), 『미소하는 침묵』(1970), 『빛과 어둠의 사이』(1976), 『서울의 하늘 아래』, 『4행시 134편』(1982), 『가슴속의 시냇물』(1982), 『아이오와에서 꿈에』(1985), 『라일락 속의 연인들』(1985), 『시인아 너는 선지자 되라』(1985), 『북한산 진달래』(1990), 『화랑연가』(1999) 등이 있고, 시 선집으로는 『꿈꾸는 빛 바다』(1986), 『바다 만세, 바다』(1987), 『한 방울의 만남』(1991), 『소나무 만다라』(2005), 『이승에서 영원을 사는 섬들』(2006), 『섬들은 외롭지 않다』(2006) 등이 있다.
그의 시는 한국적 전통에 충실한 서정시를 지향하면서도 한 줄의 시행 속에 응축된 시상(詩想)을 표현한 1행시, 4행시, 영시의 소네트 형식을 채용한 14행시, 장시 등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으며, 50대 이후에는 시선일치(詩禪一致)의 불교적 세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시적 관심사는 다양하지만 빛과 어둠, 절망과 희망, 육신과 영혼 등의 삶의 근본적인 모순의 인식에 바탕을 두고 양자간의 갈등을 넘어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인간성을 긍정‧옹호하고자 하는 그의 서정시는 한국 순수시의 전통과 닿아 있다.
셀프매점
빈 속으로 청림공원 가파른 언덕을 올라 갔다오니 내려올 때는 다리에 힘이 빠지고, 게다가 허기가 져서 당이 빠지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겨우겨우 내려와 셀프매점을 보니 지옥에서 만난 극락세계 같았다... 급한대로 탁자 위에 놓여있던 사탕과 컵라면으로 해결하고보니 천원셀프 매점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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