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국립 민속 박물관 3

浮石 2019. 5. 7. 06:00








신랑행렬


혼례식

혼례식


상여(喪輿)

상여란 흔히 초상 때 시체를 장지()로 운반하는 제구()를 말한다. 모양은 가마와 비슷하나 더 길다. 몸채 좌우에는 밀채가 앞뒤로 길게 뻗어 있어 양쪽 끝에 채막대를 가로로 댄다. 앞채막대 좌우로 2줄씩 끈을 달아 뒤채막대에 붙잡아맨 다음, 중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멜방망이를 좌우로 끼운다. 그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끈을 어깨에 메도록 되어 있다.

고대국가에서 상여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관의 사용과 “북을 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죽은 자를 보냈다.”라는 기록을 통해서 장례에서 상여가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사가에서 장례용 운구 용구로 건거・상거・유거・영거를 사용하였다. 조선시대는 국장용으로 유거・대여輿・견여輿・외재궁여輿를 제작해서 대행왕의 옥체를, 대부・사・서인용으로 윤거・지거・상거・대여・소여輿・상여를 사용해서 망자의 시신을 운구하였다.


일부 실학자들은 장례에 윤거와 지거・상거를 사용하도록 권유하기도 하였다. 여러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대여의 일부 구조를 축소한 소여가 상여로 자리 잡았다. 상여는 어깨에 메고서 망자를 운구하는 상구도 포함한다.


장례행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영여(輿)와 상여인데, 영여는 2인교 가마를 메듯이 끈을 가위표로 엇걸어 어깨에 걸고 두 손으로 가마채를 잡고 상여에 앞장서서 가는 작은 가마이다. 여기에는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실어 영혼이 타고 가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는 영여 대신 죽은 이의 사진을 어깨에 걸고 상여 앞에 서는 일이 많다.

상여의 모양은 가마와 비슷하나 더 길다. 몸채 좌우에는 밀채가 앞뒤로 길게 뻗어 있어 양쪽 끝에 채막대를 가로로 대고, 앞채막대 좌우로 2줄씩 끈을 달아 뒤채막대에 붙잡아맨 다음, 중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멜방망이를 좌우로 끼워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끈을 어깨에 멘다. 몸채는 단청식으로 여러 가지 채색을 하고, 4귀에는 기둥을 세워 위로 포장을 쳐 햇빛을 가리며, 상여 뚜껑에는 연꽃·봉황 등으로 장식한다.


대개 상여틀을 분해·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며, 옛날에는 마을마다 상여 한 틀을 공동으로 마련하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상여집을 짓고 그곳에 보관하였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향도군()이라 하며, 대개 천민들이 메는 것이 상례였으나 후에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장례행렬에서는 영여와 상여 대신 죽은 이의 사진이나 혼백을 실은 승용차가 앞장을 서고, 뒤에 주검을 실은 영구차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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