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단양팔경의 도담삼봉(島潭三峰)

浮石 2006. 4. 22. 13:46

 

단양팔경의 島潭三峰

위 치 :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爲泊仙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도담삼봉을 만난 퇴계 이황은 시 한수에 그 아름다움을 적어 노래했다.

 

남한강의 맑고 푸른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만수시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등 세봉우리가 물위에 솟아 있다.

이곳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하였다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 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살펴볼수록 그 생김새와
이름이 잘 어울려 선조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감탄스럽다.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는데 일찍이 퇴계 선생은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녘놀 드리웠네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어울어지더라"는 주옥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삼봉산(三峰山)이 떠내려가 생긴 도담(島潭) 삼봉(三峰)

정선읍 봉양 7리 속칭 적거리(원명:덕거리)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지금은 산천이 변해 이 마을의 옛 초가집은 간데 없고 상수도 수원지와 주택이 개량된 현대식 건물이지만 옛날에는 정선읍내에서도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이름난 곳이였고 마을 앞에는 가지런히 세(三)봉우리의 아담한 산이 있었으니 이 산이 바로 삼봉산이란 유명한 명산이었다.

당시 이 산 중턱에는 이 고을 향교가 위치했고 산새소리와 함께 절벽 밑으로는 조양강(朝陽江) 맑은 물이 구비쳐 흘렀으니 보는 사람마다 그 아름다움을 감탄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있은지 13년 후 을사년(乙巳年)에 큰 홍수가나 하루밤 사이에 이 삼봉산은 홍수에 밀려 떠내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삼봉산을 잃어버린 이 마을 사람들은 홍수가 줄어들자 유실된 삼봉산을 찾고자 의논한 끝에 기골이 장대한 장정 다섯 사람을 뽑아 강물을 따라 산을 찾으러 떠났다. 그러나 보름이 넘도록 고생을 무릎 쓰고 헤매였으나 삼봉산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어느 날 숲속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해가 떠오를 때였다.

한 장정이 갑자기 산을 찾았다고 소리쳐 일행이 눈을 모아 바라보니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곳에 세 봉우리의 산이 있지 않은가? 모두가 기뻐서 숨가쁘게 달려가 보니 도담(충북 단양군 매포면)강 물 가운데 떠내려오다 자리잡힌 봉우리들이 흙은 홍수에 씻겨 떠내려가 버리고 바위만 남았으니 산세로 미루어 보아 삼봉산이 틀림없었다.

잃어버린 산을 찾은 이 마을 사람들은 그로부터 수 십년 동안 해마다 가을이면 단양군 매포면 도담에 가 삼봉산의 산세를 꼬박꼬박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해 예년대로 산세를 받으러 갔는데 마침 산세를 줄 돈 준비가 안돼서 "돈내라" "좀 기다려라"하며 서로간의 언쟁이 벌어져 떠들썩한 판인데 그때 겨우 대여섯살 남짓한 동자가 앞에 나서며 "산세를 들어드릴 수 없으니 당장이라도 삼봉산을 다시 가져 가십시요."라고 거부하니 돈 받으러 간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답변할 말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신화같은 이야기가 전하여지고 있다.

지금의 옛 삼봉산 자리에는 봉양초등학교와 정선역이 자리잡고 있어 상전벽해란 말이 이를 두고 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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