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돌장승

浮石 2006. 6. 19. 10:16

 

 

장승의 유래
장승의 기원은 솟대, 선돌, 신목, 등과 함께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원시 신앙 물로서 유목, 농경, 문화의 소산으로 파악된다. 일종의 수호신앙으로서 씨족, 부족민의 공통적 염원을 담은 제정일치 시기 지배이념의 표상으로서 기능 하다가 삼국 시대 들어 중앙 집권적 국가 기틀이 마련되고 불교, 도교, 유교, 등의 통치 이대올로기가 체계화됨에 따라 불교의 습합되어 전승하게 된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장승은 만간 신앙의 저변으로 흘러들었을 뿐 불교라는 제도권에 안착되지는 않았다. 외래 신앙이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전래의 민속신앙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처럼 불교와 무관한 장승이 사찰에 등장한 것이다. 이는 장승이 민중의 삶과 정서 속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반중해 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 사회의 통치 이념인 유교가 현세적 도덕 규범의 성격이 강함에 따라 생산, 죽음이나 질병, 고통 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장승 신앙이 부활할 소지가 생겨난다. 궁중에서도 일정하게 역할을 한 무속적인 금 장군, 갑 장군이라 불리는 세화의 등장이나 용호 그림등의 유행도 그 기운을 익게 하는 또 다른 사례이다. 이는 지배층 문화에서 소외된 불교, 도교가 민간 신앙과 결합하여 신석기 이래의 민속적 장승신앙이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의 새로운 장승문화에서 그 이름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방어대장군, 지서대장군, 상원주 장군, 하원당 장군 등으로 붙여진 것이다. 이처럼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면면히 이어온 장승은 16∼17세기 임진, 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공동체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장승의 기원 :

장승은 우리 조상들의 원시신앙의 대상으로 장승을 비롯, 솟대, 선돌, 돌탑, 남근석 신목 등 과 함께 민중의 삶속에 전승되어 왔다. 그 기원은 고대에 남근숭배 사상에서 세웠다는 설, 선돌에 의한 솟대 유래설, 사찰의 경계 를 표시하는 장생고 표지설 등이 있지만, 마을의 편안과 모든 재액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설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내용출처 : (http://www.jangseung.co.kr/jangseung/mean.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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