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지금의 북평리를 도원-원창골로 부르다가 근래에 후평(뒷뜰)-북평리로 불려지게 된다. 일제시대엔 행정구역이 북면에 속해있었고 면사무소 위치도 현 제재소 기와집이었으나 지금의 여량으로 북면사무소가 옮겨갔다. 그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에서 북평면이 분리 독립하여 (1986. 4. 1) 현재의 위치에서 발전하고 있다.
북평리 (北坪里)
고려 때는 주진 고을 소재지로 되어 있었고 그후 북면소재지로 되어 있다가 1915년 4월에 면사무소를 남평리로 이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북평리라 부르게 된 것은, 정선군에서 본 리를 후평(後坪)이라 불리어 오다가, 조선 중엽에 남한강 상류인 임계 천을 중심으로 강 이남을 남평, 강 이북을 북평으로 각각 지명을 분리, 현재까지 북평리라 칭하게된 것이다.
자연부락은 상동, 하동, 항동, 내항동, 강선암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