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고봉정사

浮石 2007. 8. 13. 13:44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지방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중기에 김정(:1486~1520)이 고봉()이라 칭하고 학문을 연마하던 삼파연류봉() 정상에 최수성(:1487~1521)이 고봉정()을 세우고 은거하였다. 후에 병암() 구수복(:1491~1535)이 이어받았다.

이들이 죽은 후 구수복의 5대손인 구봉우()가 퇴락해 있던 정자를 봉우리 아래로 옮겨 현재의 고봉정사를 지었다. 원래 정사()란 명망있는 선비가 경승지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일종의 사립교육시설이다.

김정은 1507년(중종 2)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정언()·순창군수 등을 지냈으나 폐비 윤씨의 복위를 상소하였다가 유배되었다. 1516년(중종 11)에 재등용되어
도승지·형조판서를 지냈으나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사사되었는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최수성은
김굉필()의 문인으로 시문·서화·음률·수학에 뛰어난 학자였다. 기묘사화 때 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자 관직을 버리고 유랑하던 중 1521년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형되었는데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어 강릉향교에 배향되었다. 구수복은 이조정랑에 재직 중 역시 기묘사화에 휘말려 파직되었으나 1533년(중종 28) 복직되어 구례현감으로 재직 중에 죽었는데 후에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익공집으로 오른쪽 2칸에는 분합문()을 단 마루방을 두고 오른쪽 1칸에는 띠살문을 단 온돌방을 두었다. 왼쪽 방문 위에 송시열()이 쓴 ‘(고봉정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밖에 1981년에 새로 건립된 고봉사()와
관리사, 외삼문 등의 건물이 경내에 있다. 사당인 고봉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물림집으로 지붕 좌우 측면에는 풍판(:비바람을 막기 위해 박공에 이어 대는 나무판)을 갖추었다. 이곳에는 최수성·김정·구수복 3인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하고 있다.

2001년 3월 30일 충청북도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능성구씨낙주가승()의 판각을 영구히 보관하기 위하여 1640년(인조 18)에 병암() 구수복()의 현손인 낙주() 구봉서()가 만들었으며, 유사시에는 지하에 매몰할 수 있도록 제작한 희귀한 화강암제 석함이다. 고봉정사(:충북기념물 51)의 경내에 보관되어 있다.

유사시 땅에 묻을 수 있도록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아래위를 분리할 수 있다. 크기는 가로 80cm, 세로 56cm, 높이 84cm이고 표면에 '능성구씨보갑()'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족보에 대한 관념을 짐작할 수 있으며, 판목 및 서적 보존법 등에 관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능성구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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