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청풍나루

浮石 2008. 1. 4. 07:28

청풍나루

1984년 9월에 개장하여 청풍호의 명경인 옥순봉, 구담봉, 금수산을 유람선을 타면서 보게될 수 있는 청풍 나루터는 유람선을 타고 충주호 130리를 도는 선상관광도 즐겁다.
 

수경분수

* 수경분수 가동시간

   - 높이 150m, 최대높이 162m

   - 가동시간

     <봄, 가을> - 4, 5, 9 ,10, 11월

       화 ~ 금 : 11:00, 15:00, 17:00, 20:30

       토 ~ 일 : 11:00, 13:30, 15:00, 17:00, 20:30

     <여름> - 6, 7, 8월

       화 ~ 금 : 11:00, 13:30, 15:00, 17:00, 20:30

       토 ~ 일 : 11:00, 13:30, 15:00, 17:00, 19:00, 20:30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시 청풍호수에는 동양최대의 수경분수가 있습니다.

주위의 볼거리 청풍문화재단지, 번지점프장, 인공암벽장, 수상아트홀등...

 

청풍 신리교회

 신리
새말의 형성과 변천

제천에서 597번 지방도를 따라 청풍면을 경유해서 우측으로 654번 도로를 따라 승용차로 5분정도 달리면 신리(新里)에 이르게 된다. 마을은 비봉산(飛鳳山, 531.0m)의 산줄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청풍면 소재지에서는 남서쪽에 자리한다.

마을은 원래 청풍군 근서면 속했던 지역으로 새로 괸 마을이라 해서 신촌(新村)이라 했고,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신리라 하여 제천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가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이 언제, 누구에 의해 개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곳을 일명‘거미재’라고도 하며 수몰 전, 매봉과 웃담 1개반,마당재 1개반,큰마을 1개반,고등골과 던디골, 그리고 가갯거리 1개반 모두 5개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때는 마을에 총 70여 가구가 넘게 거주하고 있었고, 마을 민의 대부분은 벼농사에 주력했으며, 약 40여 가구가 담배를 경작했다. 그 이외에 경작물은 고추,보리,밀,콩 등이 있었다.
1998년 현재 마을은 총 3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주로 담배와 고추를 경작한다.


새말사람들의 신앙

마을에서는 정월에 택일하여 동제를 수행한다. 천지 봉의 큰 소나무와 큰 마을에 있었던 서낭당에서 제의를 수행하는데, 먼저 천지 봉에 있던 당목에 제를 올린 다음 서낭당에서 제를 올렸다. 제물은 백설기와 막걸리만 올렸고, 제주는 청풍 도가에서 받았다. 제관은 연륜과 덕망을 갖춘 자로서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을 선출하며, 제의 10일전부터 정결하게 몸을 닦고 금기생활에 접어든다.

큰 마을에 있었던 서낭당은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허물었으며 천지 봉에 있던 소나무는 송충이 피해로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라에 큰 일이 날 때 송충이가 생긴다구 걱정하였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4.19가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 당 나무(소나무)에 생긴 송충이가 천지 봉에 있는 모든 나무들을 다 갉아먹어 마을의 주산(主山)에는 벌건 흙만 보였다. 이 곳 천지 봉이 영산(靈山)이라는 것은 다음의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래 전 신리 마을사람이 한 명 죽었고, 묘를 천지 봉에 쓰려고 땅을 파는데 이상하게도 신리 마을 개들이 천지 봉을 향해 짖었다. 그래서 묘소 파는 것을 중지하고 다른 곳으로 묘 자리를 잡았는데, 그 후로 천지 봉이 영 산임을 알고 묘를 쓰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가뭄이 심해 농산물이 타 들어가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는데, 이를 ‘무지 지낸다’고 하여 삿갓과 도롱이를 쓰고 마을의 아낙들이 ‘소낙비 온다, 소낙비 온다’ 하여 마을을 돌아다녔다.


새말 사람들의 생활

마을 사람들은 주로 북진나루와 황석나루를 이용하여 청풍을 오갔다. 뱃사공에게 배 삯으로 봄에는 보리 1말, 가을에는 쌀 1말 삯을 내었고 나중에는 마을 전체에서 한번에 수거하여 보리 1가마, 가을에는 쌀 1가마를 주었다.

청풍에 중,고등학교가 생긴 후,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한 배를 탈 때부터 곡식을 받지 않고 돈으로 받았다고 하는데 한 번 운임이 80년대 초엽에 50여 원 정도를 받았다. 하지만 홍수 때나 물이 불어나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에는 이보다 더 높은 배 삯을 받았다.


 

'충청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주시 산척면  (0) 2008.06.25
청풍면(淸風面)  (0) 2008.01.09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  (0) 2008.01.03
금남루(錦南樓)  (0) 2007.12.25
금병헌(錦屛軒)  (0) 2007.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