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계단
면앙정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3단계로 나뉘어져 있으며 상당히 높고 가파르다....
두번째 계단
먼저 올라간 친구가 힘이 드는지 한숨 고르고 있다..
마지막 세번째 계단으로 제일 높다..
높고 가파른 3단계의 돌계단은 모두 141계단이다.. 장애자나 무릎이 아픈 노인들을 위해 계단옆으로 우회하는 오르막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문학의 최고의 백미인 면앙정가
너럭 바위 위에
송죽을 헤치고
정자를 언쳐시니
구름 달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버렷는듯
옥천산 용천산
나린 물이
정자 앞 너븐 들에
올올히이 펴진드시
넙거든 기디마나
프르거든 희디마나
면앙정의 현판 글씨는 당대의 명필 성수침이 썼다 한다.
'면앙’이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본다.’ 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는 넓고 당당한 경지가 담겨져 있다.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402
면앙정은 송순이 41세(1533년)때 담양의 제월봉 아래에 세운 정자이다. 그가 면앙정을 지은 것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원래 면앙정 터에는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금어(金魚)와 옥대(玉帶)를 두른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오락가락 하는 꿈을 꾼 그는 자기 아들이 벼슬을 할 것이라 여겨 아들을 공부 시켰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집안마저 가난해졌다. 곽씨는 이곳의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송순이 그 터를 사 놓았다가 나중에 정자를 지었다. 뒷날 이곳이 소위 면앙정 가단을 이루어 당시에 이름난 학자, 가객, 시인들의 창작의 산실 휴식처가 된 것을 보면 곽씨가 해몽을 틀리게 했지만 꿈은 제대로 꾸었던 것 같다.
송순은 1524년에 곽씨로부터 매입한 이 갈마음수 명당자리에 1533년에 면앙정을 짓는다. 곽씨의 꿈대로 면앙정을 드나드는 출입객들은 호남제일의 가단을 형성하였다. 여기에는 임제, 김인후, 고경명, 임억령, 박순, 소세양, 윤두수, 양산보, 노진 등 많은 인사들이 출입하며 시 짓기를 즐겼다. 특히 송순은 벼슬에서 물러나 강호생활을 하면서 자연예찬을 주제로 한 작품을 지음으로써 강호가도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으며, 〈면앙정삼언가〉·〈면앙정제영〉 등 수많은 한시(총 505수, 부1편)와 국문시가인 〈면앙정가〉 9수,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오륜가〉 등 단가(시조) 20여 수를 지어 조선 시가문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면앙정가단은 그 후에 나타난 호남의 성산가단(星山歌壇), 영남의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노가재가단(老稼齋歌壇)보다 선구이며, 영남의 가단이 전문 가객 중심이라면 면앙정가단은 사대부 출신의 문인 가객이 중심이었다.)
그가 이 초가 한 칸 정자를 지은 후 지은 것으로 보이는 아래 시는 너무나 유명한 자연시이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면앙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전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1979년 지붕번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글 : 담양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송강문학기행 : 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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