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Music

리칭의 스잔나

浮石 2013. 5. 6. 07:30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억하는 '스잔나'라는 영화는 두 편이 있습니다. 

1970년 개봉된 리칭 주연의 '스잔나'와 1976년에 만들어진 합작영화 '사랑의 스잔나'입니다. 두 편다 한 여인의 슬픈 죽음을 소재로 한 최루성 드라마로 우리나라의 당시 정서에 잘 맞는 작품으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리칭의 스잔나는 1967년 홍콩의 하몽화 감독 작품인데 우리나라에는 1970년 여름에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몇달간 폭발적인 관객이 장사진을 이루며 50만여명을 동원하는 대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스잔나'는 고등학교 여학생 주인공인 스잔나의 짧은 삶을 다룬 슬픈 이야기입니다. 스잔나와 샤오팅은 한 학교 동창이고 샤오팅이 생일이 빨라 언니입니다.  스잔나의 어머니와 샤오팅의 아버지는 10년전에 만나 사랑하던 사이인데 부모의 결혼반대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했는데 둘 다 배우자를 잃고 속칭 '돌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만에 재회하여 결혼하게 되고 스잔나와 샤오팅을 자연스럽게 남매가 되었습니다.

 

초반부에 스잔나의 가족의 이야기가 짧게 흐르고 9년이 지나 고교 졸업반이 된 스잔나의 이야기가 주 내용으로 펼쳐집니다.  스잔나는 이기적으로 못된 소녀였고 샤오팅은 착하고 모범생이었습니다.  욕심많은 스잔나는 샤오팅이 좋아하는 남학생까지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던 어느날 머리가 아파서 쓰러진 스잔나는 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고 6개월만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게 됩니다.  가족에게는 아픈 것을 숨기는 스잔나는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착한 아이가 되며 살아있는 동안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첫째는 아들이 없는 부모에게 아들이 생기게 해달라는 것, 둘째는 언니가 좋아하는 남자와 잘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  세째는 가엾은 고아들을 위한 연극공연을 무시하 마치게 해달라는 것, 이 세가지 소원만 이루어지면 죽어도 미련이 없다는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스잔나가 뇌종양 선고를 받고 180도 달라진 착한 아이가 되지만 일은 꼬여서 스잔나의 행동을 오해한 부모와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이상하게 사건이 흘러가기도 합니다.
결국 스잔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극 '홍루몽'을 마지막까지 연기하고 쓰러지게 되고 새로 태어난 동생을 보고 나서 엄마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전형적인 '신파영화'로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는 영화인데 70년대 우리나라 극장가는 '신파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러브 스토리'를 비롯하여 '휠링 러브' '저하늘에 태양이' '라스트 콘서트' '챔프' '죠이' '선샤인' '예스터데이' 같은 영화들이 히트를 했습니다.  

 

스잔나의 인기는 단지 신파적 스토리였기 때문만은 아니고 영화출연 당시 주인공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19세의 풋풋한 리칭의 매력이 큰 역할을 했고,  더구나 같은 동양의 이웃인 홍콩이 무대였지만 상류층의 잘 살고 '럭셔리'한 분위기도 한 몫 햇을 것입니다.
67년 작품이지만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화면이 꽤 인상적이고 특히 스잔나의 어머니가 입고 나오는 '민소매 원피스'를 비롯한 멋진 귀부인 의상도 인상적입니다.   스잔나와 샤오팅의 방도 마치 호텔방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고 아늑했습니다. (크! 40년도 더 지난 "21세기"인 지금의 제 방도 훨씬 쬐그마합니다.)

 

여러가지로 스잔나는 시기도 잘 맞았고 여배우의 신선함도 있었고 영화내용의 정서도 맞았고 그래서 '대박중의 대박'을 친 영화가 되었고 아마도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중 거의 최다관객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기가 많았던 영화다보니 1981년 재개봉을 하기도 했었고, 영화속에서 스잔나가 불렀던 노래까지도 당시에 꽤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히 '전설적인 영화'가 된 셈이지요.

 

상업영화는 '배우'의 존재감이 영화를 좌우하게 됩니다.  뻔한 스토리의 단순한 내용이지만 리칭이라는 배우에 의해서 떠오른 영화이고 영화가 떠오른 만큼 리칭이라는 배우도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면서 아시아의 별이 되었으니 리칭 하면 스잔나, 스잔나 하면 리칭이 연상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무협의 시대'에 무협영화가 아닌 홍콩물로서 크게 히트했던 '스잔나'는 지금은 굉장히 식상한 소재가 된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을 다룬 영화지만 '리칭'이라는 흥행스타를 만들어 낸 의미있는 영화로 우리나라 영화흥행의 역사에 남게 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