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예천 삼강주막

浮石 2013. 9. 14. 07:00

  

500년 넘은 회화나무 아래의 삼강주막

 

이 회화나무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상주군에 있는 한 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큰 돈을 번다하여 연장을 가지고 이 나무를 베려하므로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 하여 베지 못하게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나무그늘이 좋아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하므로 꿈에서 깨어나니 하도 생생하여 식은 땀을 흘리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혼비백산 달아났다고 한다.

 

삼강주막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삼강주막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되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강주막 뒷 쪽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외상변제 장부

 

주모 할머니의 외상장부

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부엌 벽에 금을 그어 외상장부를 만들어 놓았다.

짧은 금은 술 한 잔, 길게 그은 금은 한 되(한 주전자)로 표시해 놓았다.

 

삼강마을 오래된 주민 분들은 “무작정 주막에 앉아 뱃사공을 기다리던 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다 기분 좋게 술이 오르면 배를 보내고 주막에 눌러앉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옛날 오래된 삼강리주막의 풍경을 떠올린다.
지금은 길고 큰 다리가 생겨나고, 자동차도 많다보니 나룻배를 타는 사람들이 줄어듦에 따라 어느새 나루터도 없어진지 15년이 되었다.

 

흙담길

무섬마을 들돌은 삼강주막 뒤에 500년 된 회화나무 아래에 있다..

 

부락 입구나 공터 마당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와 보존되고 있는 “들돌”이 있었다.

그 들돌은 그 마을 청년들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물로 청돌이나 팥색돌로 무게는 약 180-200근(130kg)정도이고 손잡이가 없는 둥근 편이고, 보통 사람은 그 돌 뿌리를 띈다고 하여 땅에서 겨우 띌 정도이고, 좀 더 건장한 사람은 무릎정도 올릴 수 있고, 상당히 힘깨나 쓴다는 사람은 허리한다고 하여 허리까지 올릴 수 있었고, 아주 힘이 센 사람은 들어서 어깨넘어로 넘기는데, 그렇게 힘이 센 장사는 부락에 한 두 사람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러한 들돌을 외지사람이나 그 부락 취객(장가든 신랑)이 무심코 돌에 걸터앉거나, 발을 돌에 올렸다가는 그 부락 청년들에게 큰 봉변을 당하였다.

또한 청년들이 나와 그 돌을 들어 보라고 한다. 그때 그 돌을 들어 허리를 하거나, 뒤로 넘기질 못할 때는 청년들이 자기네 부락 힘의 상징물을 깔보는 행위를 했다고 하여 혼줄이 나고 술값 냥이나 들어야 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는 세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 있다. 안동댐을 지나온 낙동강,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죽월산의 금천 이곳을 “삼강”이라고 한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곳을 지나 회룡포, 하회마을까지 소금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 삼강나루터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성천

내성천 

멀리 보이는 다리가 회룡교이다.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회룡포 전망대에서 삼강주막으로 가는 방향의 성저교(잠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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