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회연서원(檜淵書院)

浮石 2014. 5. 29. 07:00

 

檜淵書院(회연서원)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51호

 

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한강이 선조 16년(1583년)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었다.
한강 사후에 문도들이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인조 5년(1627년)에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한강을 주향(主享)으로 모신 서원을 건립하여 향사(享祀)를 지냈으며, 숙종 16년(1690년) 사액받았다.

초기에는 강당·사당을 위시하여 지경재(持敬齋)·명의재(明義齋)·양현청(養賢廳)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고종 5년(1868년) 서원훼철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75년에 사당(祠堂)을 1976년에 동·서재 신축하고 담을 보수하는 등 서원의 위용을 회복하였다.

한강은 동방 5현의 한 사람인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학문의 연구대상을 온 우주의 공간으로 삼고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예학 등 여러 학문에 통달한 대학자였다.

서원의 묘우(廟宇)에는 한강을 주향,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배향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현사(鄕賢祠)에는 신연(新淵) 송사이(宋師),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동호(東湖) 이서(李)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서원 앞뜰 백매원(百梅園)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으며, 유물전시관에는 선생의 저서 및 문집의 각종 판각 등 유물·유품이 보존되어 있다.

견도루見道樓(회연서원의 문루)

견도루見道樓(회연서원의 문루)

도를 본다는 뜻의 문루인 견도루를 들어서면 회연서원 앞뜰에는 큰 노송들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 뜰은 옛 백매원이라는 정원으로 이 곳의 동쪽 담장안에는 신도비가 서있다.

寒岡 鄭逑 神道碑(한강 정구 신도비)  도 유형문화재 제412호

 

이 비는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조선 성리학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신도비(神道碑)이다. 비석은 인조 11년(1633)에 수륜면 수성리 갓말마을 뒷산인 창평산 묘소 부근에 세워졌다가 한강 정구의 묘소를 성주읍 금산리 인현산으로 이장하게 되면서, 현종 3년(1668)에 현재의 위치인 회연서원(유형문화재 제51호)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신도비는 비신(碑身), 이수(?首), 귀부(龜趺)가 완전하게 잘 남아 있다. 이수에는 쌍룡문(雙龍紋)과 여의두문(如意頭紋)이 깊이 새겨져 있고, 귀부는 귀갑문(龜甲紋)이 양각으로 얕게 새겨져있다. 신도비의 전체 높이는 390cm이며, 비신의 높이 230cm, 정면 폭은 106cm, 두께는 29.5cm이다. 비신의 전면 상단에 전서(篆書)로 “문목공한강정선생신도비명(文穆公寒岡鄭先生神道碑銘)”이라 새겼는데, 글자의 크기는 가로 6cm, 세로 9cm이다. 비신의 4면에 걸쳐 가로 2cm, 세로 2.2cm 크기의 글자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지었고, 글씨는 김세렴(金世濂)이 썼다.
한강 정구 신도비는 조성연대가 오래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동방 5현의 한 사람인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학문의 연구대상을 온 우주의 공간으로 삼고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예학 등 여러 학문에 통달한 대학자였던 한 강 정구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회연서원은 1690년(숙종 16)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숙종의 친필인 회연서원 편액이 달린 강당과 한호(韓濩, 호는 石峰) 글씨의 현판이 달린 지경재(持敬齋), 명의재(明義齋), 양현청(養賢廳)등의 건물이 있었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될 때 강당건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400년이 되었다는 회연서원 느티나무

서편에 있는 서재인 지경재(持敬齋)

1974년 지방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보수하고 1976년 동재와 서재를 새로 지었다.

회연서원은 비교적 좌우가 길고 평평하여 서원의 일반적인 형태인 전학후묘 또는 전묘후학의 배치가 아니라 좌우로 나란히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이 놓여있다.

 

경회당(중앙 강당)

 

향현사(사당)

향현사(사당)

향현사에는 야성인 신연 송사이와 광산인 용재 이홍기, 광산인 육일헌 이홍량, 광산인 모재 이홍우, 광산인 동호 이서 선생을 봉향하고 있다. 

 

숭모각(유물관)

선생의 저서 및 문집의 각종 판각 등 유물, 유품이 보존되어 있다는 유물관.

숭모각(유물관)

숭모각(유물관)

백매원(百梅圖) 매화나무

옛날에 문목공 한강 정구선생이 이 곳에 매화나무 100 그루를 심었다고하여 백매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강 정구선생께서 직접 심으셨다고 전해지는 400년 넘은 매화나무가 최근까지 3 그루 남았는데 10여 년 전부터 2 그루가 시름시름 고사되어 가다가  몇 년전 완전 고사하고 말았다. 

아직 1 그루는 다행이 왕성하게 생장을 유지하며 살아 있으나  2 그루의 고사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회연서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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