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

浮石 2015. 8. 6. 06:00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3

 

국보 제201호. 높이 4m. 암산을 파서 거대한 감실형 석실을 만들고 원각에 가까운 커다란 불좌상을 고부조로 새긴 것이다. 현재 감실(龕室)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불상 자체도 다소 파괴되고 풍화까지 된 상태이다. 감실형 광배에는 화불이 배치되었는데 일부가 깨어졌고, 불상 좌우에 공간이 있어서 협시보살이 안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얼굴은 넓고 큼직하며 양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풍화 때문에 원 모습이 다소 손상되었다. 그러나 고졸한 미소가 전면에 나타나 있어서 박진감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불(佛)의 위엄이 잘 나타나 있다.

통견의 대의(大衣)는 가슴 등이 손상되어 불확실한 면도 있지만 장중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옷자락은 대좌를 덮어내려 상현좌를 이루고 있는데 역시 고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여러 특징은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 연상되며 이런 특징이 더 진전되면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으로 이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애불상은 7세기 전반기의 고신라불상일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적 연대는 7세기 후반인 고신라 말 통일신라 초기로 추정된다.

 

 

지림사(智林寺) 대웅전

 

국보 제201호로 지정된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유서 깊은 절로 유명하다. 옛날, 수도하는 승려가 500명이 넘을 만큼 대사찰이었다고 전해지는 지림사는 축서사() 창건 설화에도 등장한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가 지림사에서 산 쪽을 바라보다 멀리 상서로운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그 빛이 나오는 곳에 지금의 축서사를 지었다고 한다.

조선 정조(18세기) 때 저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림사는 문수산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까지 사찰이 존속하며 불법의 전통을 이어오다가, ‘화재로 불타 없어져서’ 혹은 ‘축서사 때문에 사세가 기울어서’ 등의 이유로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1949년경 권보훈()이라는 승려가 현재 위치에 조그마한 법당을 세우고 수월암()이라고 이름지었다. 그 후 국보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을 보호 관리하며 지림사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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