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골(妙谷)
용문산의 지맥이 튼튼하게 수십 리를 가서 부용봉이 되고, 그 아래 강과 산이 휘감아도는 따뜻하고 완만한 곳이 묘골이다.
조선 숙종 41년(1715) 함양 여씨가 처음 입향하면서 이 집을 지은 후 "영회암(永懐庵)"이라는 택호를 붙이고, 그 옆에 기문(記文)을 두어 자손들로 하여금 선조의 유훈을 실천케 하니 영회암기(永懐庵記)의 첫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영원히 이름과 명예를 지키라"
몽양 선생께서 태어나 자란 이 곳은 2010년 문화재 발굴과 인근 촌로 및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2011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1886. 5.25 ~ 1947. 7.19) 선생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1886년 5월25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골(妙谷)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한 62년의 생애를 보내다,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차량으로 이동 도중, 백의사의 집행부장 김영철이 선정한 한지근(본명 이필형)외 다섯 명의 저격을 받고 암살되었다.
사후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 2008년 다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훈 1등)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여운홍의 친형이고, 철학자 박찬기의 외삼촌이다.
1886 | 5월 25일(음력 4.22)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골 출생. |
1900 | 배재학당 입학. |
1907 | 기독 사립 광동학교 설립. 양평에서 국채보상운동 전개. |
1908 | 부친 탈상 후 집안의 노비를 해방. 서울로 이사, 승동교회에서 활동. |
1910 | 강릉 초당의숙 교사로 초빙되어 선비들 계몽교육 전념. |
1911 | 서울 승동교회로 복귀, 설교 및 전도 활동. YMCA 운동부장으로서 청년운동 전개. |
1912 | 평양의 장로교회연합 신학교 입학. 서울YMCA 야구팀을 이끌고 일본 도쿄 원정. |
1914 | 중국 망명 난징(南京) 진링(金陵)대학 영문과 입학. |
1919 | 1월, 신한청년당 대표로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 3·1운동 기획·추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11월,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도쿄 방문, 제국호텔에서 독립 연설 |
1922 | 모스크바에서 열린 원동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 |
1929 | 상하이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
1932 | 가출옥으로 석방. |
1933 |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 |
1936 |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한 손기정 선수 일장기말소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 자진폐간. |
1942 |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체포, 2차 투옥. |
1943 | 3년 집행유예 판결로 출옥. |
1944 | 전국적 조직인 ‘조선건국동맹’, ‘농민동맹’ 조직해 해방 후의 건국을 준비. |
1945 | 8월 15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치안권 넘겨받음.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위원장 여운형), 전국에 145개 지부 결성 |
1946 | 좌우합작위원회 구성, 5차례의 38도선 이북 방문하여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좌우 합박·남북합작 운동에 전력을 쏟음. |
1947 | 7월 19일, 해방 후 12번째 테러인 권총 피격으로 혜화동 로터리에서 62세의 일기로 서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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