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앉아 있다
임형신
담벼락 벽화 밑에
구순의 할머니 또 다른 벽화로 앉아있다
할머니가 잠깐 조는 사이
흩뿌려진 신산한 날들 새털 구름으로 떠가고
사리원 옛집의
구름 바람 햇빛들이 같이 졸았다
한 골목이 조는 동안
세상의 모든 골목이 졸고 있다
이동 슈퍼의 확성기가 골목을 깨울 때까지
졸다 깨다
그림자의 농담(濃淡)과
그늘의 징후를 예찰하는
오래된 고요가 머물다 가는 의자에는
시간의 무게를 재고 있는
또
다른 고요가 그늘에서 그늘로
자리를 옮긴다
(계간 "다시올 문학" 2015년 가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화/이수옥 (0) | 2016.01.12 |
---|---|
바람불어 좋은 날 / 이수옥 (0) | 2015.12.27 |
수련은/임형신 (0) | 2015.10.13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 - 희망촌 1길 / 임형신 (0) | 2015.04.05 |
궁장동(窮藏洞) 일박 (0) | 2015.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