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앉아 있다 / 임형신

浮石 2015. 11. 5. 17:19




고요가 앉아 있다


                        임형신


담벼락 벽화 밑에

구순의 할머니 또 다른 벽화로 앉아있다

할머니가 잠깐 조는 사이

흩뿌려진 신산한 날들 새털 구름으로 떠가고

사리원 옛집의

구름 바람 햇빛들이 같이 졸았다

한 골목이 조는 동안

세상의 모든 골목이 졸고 있다

이동 슈퍼의 확성기가 골목을 깨울 때까지


졸다 깨다

그림자의 농담(濃淡)과

그늘의 징후를 예찰하는

오래된 고요가 머물다 가는 의자에는


시간의 무게를 재고 있는

다른 고요가 그늘에서 그늘로

자리를 옮긴다



(계간 "다시올 문학" 2015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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