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浮石 2016. 4. 13. 06:00




마을 이름인 관기(官基)는 곧 “관(館)”의 터를 말함이니,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남으로 내려왔다 돌아가면서 이곳에 이르러 몇 달을 머물렀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마을 앞으로 보은의 주요 하천인 삼가천, 보청천, 적암천이 모여 큰물을 이루어 흘러간다, 예로부터 그 천을 끼고 넓은 들을 이루어 물산과 인심이 넉넉하였고 고장을 빛낸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지금도 관의 터답게 여러 행정 관청이 마을안에 있어 생활을 돌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마을 앞 성미산 자락에 삼국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산성의 자취가 남아 있는데 이는 곳 우리 마을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눈을 들어 마을 앞 남서쪽을 바라보면 고봉정사(孤峰精舍)가 있다.

조선 종중 때 기묘명현 가운데 한 분인 병암 구수복(屛巖 具壽福)이 이곳에 머물면서 후학을 가르치고 강론하면서 삶의 터전으로 삼았으니 오늘에 이르러 능성 구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게 된 연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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