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폭포는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의 3대 폭포 중의 하나이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물이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높이 23m의 두 줄기의 폭포가 까만 절벽에서 쏴 하는 장쾌한 폭포음과 시원한 바다와 어울려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게다가 폭포 주위의 수직절벽과 노송들이 더해져 예부터 이 경관을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 하여 영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았다.
정방하폭(正房夏瀑)
정방하폭(正房夏瀑)이란 여름철에 정방폭포(正房瀑布)의 깍아지른 바위 벼랑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처럼 보일 때를 말한다. 폭포의 높이는 23m, 폭포 밑은 수연(沼淵)을 이루고 있다. 특히 주변의 해안절벽은 장관을 이루고, 앞바다에 뜬 섶섬, 문섬, 새섬 등은 난대림이 우거져 남국의 풍취를 한결 돋군다.
중국 진(秦)나라 때 시황제의 사자(使者) 서불(徐佛)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에 불로초를 구하려고 동남동여(童男童女) 5백여명을 거느리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폭포 바위벼랑에 '서불과차(徐佛過此)'란 네 글자를 새기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그 외로 바다 속에서 금빛 눈부신 한 무리의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더니 그 속에서 한 마리의 황금 빛 용이 나와서 한동안 폭포를 바라보다가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사라졌는데 폭포 위에서 피리를 불면 용이 나와 춤을 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영주십경(瀛洲十景)의 제1경 명승지
정방폭포 절벽에는 `서불과차(徐不過此)`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 진시황제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왔던 서불이라는 사람이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서쪽으로 돌아가다가 정방폭포의 아름다움 에 흠뻑 취해 정방폭포 절벽에 `서불과차` 라는 글자를 새겼다 하는데, 실제 이 글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이었다. 중국 진시황은 세상을 모두 자기 손아귀에 넣고 권세를 부리면서 술과 여자와 노래 속에 살면서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려고 하였으나 차차 자신 육신이 늙어감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막강한 군사를 이루어 놓고 만리장성을 쌓아 왜군의 침노를 막을 수는 있었으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은 스스로 힘에 의하여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왕으로는 체면에 없이 괴로워하기 시작하였다.
왕은 모든 신하들을 모아 놓고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이 없는가하고 물었다. 누구도 그 해답을 말하는 자가 없었다. 사람이 영원토록 죽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은 물론이지마는, 설마 있다고 하더라도 그 비방을 진시황에게 알려드릴 누구도 없었다. 오히려 왕이 어서 죽기를 모두 기다리는 판국인데 누가 그 비밀을 왕께 아뢸 것인가.
그런데 꾀많은 서불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 폭군인 진시왕의 휘하에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소인이 듣건데, 저 동쪽 나라 작은 섬 영주라는 곳 영산 한라산에 사람이 먹으면 영원토록 살 수 있다는 불로초(不老草)가 있다고 하옵니다. 소인이 성심을 다하여 그 약초를 캐어오고자 하나이다."
왕은 귀가 번쩍 뜨였다.
"오, 과연 네가 가장 나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로구나. 만약 네가 그 불로초를 캐어온다면, 내가 이 나라의 땅 절반을 너에게 주겠다."
왕은 정말 서불이 자기를 위해 불로초를 캐오려는 줄 믿고 기뻐하였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것을 캐어오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옵니다. 그러하오니 황송하옵니다만, 동남동녀 오백을 차출하여 주시면 합니다."
"동남동녀 오백이라,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에 쓰려는고?"
"예, 한라산이라는 그 산은 험하기가 이룰 데 없음은 물론 그 험한 산속 깊이 깊이 숨어 사는 그 불로초라는 아무 눈에라도 띄는게 아닙니다. 마음과 몸이 정결하고 흠이 없는 동남동녀들이 눈에만 띄인다 하오니 그런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가 합니다."
서불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지경을 당하여 왕이 서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왕은 서불이 원하는 대로 동남동녀 오백에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먹고 쓸 모든 물건을 준비하고 곤륜산에서 좋은 재목을 베어다가 큰 배를 여러 척 만들고 하여 서불 일행을 내보내었다.
이렇게 진시황의 휘하를 떠난 서불 일행은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한라산에 올라 불로초를 캐기는 커녕 산구경만 하였다. 한라산 뿐만 아니라 제주의 여러 절경을 구경하면서 섬을 한바퀴 돌다가 지금 정방폭포에 이르러 구경을 하고 다시 동쪽으로 떠나면서 정방폭포 바위 위에 그들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글귀를 새겨두었다. 서불과차(徐市過此)란 글귀다.
지금도 폭포 상단 바위에는 그런 글 흔적이 있다고 한다. 그들 일행은 동쪽으로 가서 어느 땅에 정착하여 그들 대로 작은 나라를 이루었을 거라고 여겨진다. 애초부터 불로초를 캐겠다는 것은 공연한 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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