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명동(明洞)

浮石 2016. 6. 15. 06:00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이다. 일제 때 명치정이었다가 해방 후 1946년 명동으로 개칭했다.
조선시대에는 주택지였으나 일제 때 충무로 1·2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인접지역인 명동도 상업지구가 되었다. 그러나 명동이 현재의 모습으로 된 것은 6·25전쟁 직후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결정되면서부터이다. 1956년 이후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양잠점, 양화점, 귀금속, 대형백화점, 금융기관 등이 밀집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쇼핑지로 애용되어왔다.
강남의 압구정동이 새로운 패션 중심지로 등장하면서 위축되었으나 상인들을 중심으로 명동의 위상을 되찾고자 1982년부터 명동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2014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었으며, 중국과 일본 등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면서 쇼핑 관광지의 면모를 되찾아가고 있다.


조선 시대 한성부 5부 49방 중 남부(南部)의 명례방(明禮坊)에 속하였으며 명례방골 또는 종현(鍾峴)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명동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명치정 1·2정목(明治町一·二丁目)이 되었고, 1946년에 명동1가·명동2가로, 1955년에 이를 합하여 명동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주택지로 밀집을 이루었고, 일제 강점기 때 충무로 일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명동도 점차 상업지구로변모하게 되었다. 1923년 이후부터 명동은 서울의 번화가가 되었고, 그 후 광복과 6·25사변을 전후한 시기에 여전히 서울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광복의 환희, 전후의 허무와 페이소스가 흐르던 이 거리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인들은 명동거리의 다방과 술집 등에 모여 예술과 인생을 논하며 불운하였던 시대의 한과 정을 풀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 직후 정부가 전재복구재건을 위한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결정한 이후부터이다. 1956년 이후 도시재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고급양잠점, 양화점, 귀금속, 대형 백화점, 각종 사무실, 금융기관의 본사, 쇼핑센터 및 소매전문점들이 밀집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쇼핑 관광지로 애용되어 왔다. 당시에 국립극장과 명동성당·중국대사관·중앙우체국 등 근대건축물과 공공기관이 산재해 있었고 문인들의 집합소였던 여러 다방들은 음악·미술·문학·사진·연극 등 문화와 예술의 무대였다. 그 후 이곳은 점차적으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소비문화의 중심지, 유흥의 거리로 바뀌어 갔다.

1970년대까지는 서울의 번화가로 대표적인 곳이었으며, 1976년에 3·1고가로의 건설로 저동 1가에서 충무로 2가에 이르는 도로가 5m에서 15m로 크게 확장되면서 현재와 같은 도시형태를 갖추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뒤이어 강남 개발과 함께 영동·반포·여의도 등 부도심의 성장으로 금융기관이 여의도로 이전해 가고 대형백화점과 상가 등이 새로이 조성됨에 따라 명동의 상권과 중심성은 상당히 위축되어 갔다. 특히 압구정동 일대가 새로운 패션 중심지로 등장함에 따라 최신 유행의 산실이라는 명동의 기능은 점차 퇴색되어 갔다.



명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행정구역 중의 하나인 명례방의 명자를 따서 지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 1946년에 밝은 마을, 밝은 고을이란 뜻의 명동이라 개칭했다.

조선시대의 명동은 주택지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충무로 1·2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그 인접지역인 명동도 점차 상업지구로 발전했다. 그러나 명동이 오늘날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 직후 정부가 전재복구재건을 위한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결정한 이후부터이다. 1956년 이후 도시재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고급양잠점, 양화점, 귀금속, 대형 백화점, 각종 사무실, 금융기관의 본사, 쇼핑 센터 및 전문점들이 밀집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쇼핑 관광지로 애용되어왔다.

한국 유행의 첨단지역으로서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금융기관이 여의도로 이전해가고, 영등포·청량리·미아리·상계·반포·여의도 등 서울의 부도심이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강남지역의 개발과 함께 대형 백화점과 상가 등이 새로이 조성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압구정동 일대가 새로운 패션 중심지로 등장함에 따라 최신 유행의 산실이라는 명동의 기능은 점차 퇴색해가고 있다. 따라서 명동의 상인들은 보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과거 명동의 위상을 되찾고자 1982년부터 상인과 시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명동축제를 봄·가을로 개최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쇼핑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0년 현재 명동의 업종별 산업구성은 도·소매업이 전체 산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제조업과 금융·보험·사회 서비스 등의 서비스업이 주류를 이룬다. 명동의 면적은 0.44㎢, 인구 3,208명, 인구밀도 7,291명/㎢이지만 이는 상주인구를 토대로 한 것이고 실제로는 하루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드나든다. 그러나 명동의 상주인구는 해마다 줄어들어 야간에는 인구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명동에는 명동성당, 서울 중앙우체국,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한국본부, 중국대사관 등의 주요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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