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창덕궁 돈화문(敦化門)

浮石 2016. 7. 18. 06:00



돈화문(敦化門:보물 383호)


돈화문은 태종 12년(1412)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 40년(1607)이 되어서야 중건을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1609)에 완공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976년 돈화문 보수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서 밝혀졌다. 이때 세워진 문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니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으로 보물 제383호이다. 다른 궁궐의 정문보다 규모가 큰 정면 5칸 측면 2칸에 2층 구조인데, 중앙에 4개의 고주와 앞뒤와 옆면에 14개의 평주()를 세워 그것을 받치고 있다.

지붕의 형식은 우진각이며, 공포는 외2출목, 내3삼출목의 다포계 건물이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이 세 개의 홍예문을 놓은 석축 위에 2층의 문루를 세운 것과는 퍽 다른 구조이다. 특이한 점은 정면 5칸 가운데 좌우로 한 칸씩이 벽으로 마감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구조로, 중국의 황제가 아닌 제후국의 군주는 대문을 3칸으로 해야 한다는 지난날 동아시아에 통용되던 원칙을 수용한 결과라 설명되고 있다. 이렇게 막혀 있는 좌우 협칸의 안쪽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고 2층 입구에는 판문을 달았으며, 안쪽 기둥 없이 탁 트인 공간에는 마루가 깔려 있다. 건립 당시에는 이곳에 큰 종과 북을 걸어놓고 시각을 알려주거나 비상시에 위급을 전했다고 한다.

본디 평상시에 궁궐의 정문을 이용하는 것은 임금이나 외국 사신들이었는데, 돈화문 역시 임금의 전용문인 가운데 어칸을 좌우보다 조금 넓게 하여 위계를 두고 있다. 신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들던 문은 동쪽의 단봉문()이었다고 한다.

돈화문 양쪽으로는 문을 지키던 수문장이 근무하는 수문장청이 있었으나 지금은 담으로 변해 있다. 〈동궐도〉()에는 수문장청의 위치와 모양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는데, 특이하게 돈화문의 지붕이 팔작지붕으로 그려져 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의 정문이 모두 우진각지붕인 점을 감안하면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동궐도〉를 통해 문 앞으로 월대와 기단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남쪽으로 넓은 월대를 만들고 그 위에 두 벌의 기단을 쌓아 문을 세웠는데, 이 월대가 한동안 사라지게 된 적이 있었다. 대한제국 말기에 순종과 총독부 고관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출입의 편리를 위해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땅에 묻힌 채 90여 년이 흐르다가 1997년에 이르러 월대를 되살리는 공사를 시작하기는 했으나 완벽하게 제 모습을 찾아주지 못하고 지금과 같이 도로면보다 낮게 노출된 채 어색하게 복원되었다.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이 반듯하고 아담하여 여성적 아름다움으로 비유되고 있다면, 정면 5칸의 큰 규모와 단순한 구조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돈화문은 중후한 남성적 품격이 느껴지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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