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越 風景

청령포(淸冷浦)

浮石 2018. 6. 26. 06:00


청령포는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17세의 어린 단종이 머무르던 곳이다. 아름다운 송림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서쪽으로 육육봉(六六峰)이 우뚝 솟아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삼면이 서강의 깊은 물줄기로 둘러싸여 나룻배를 타지 않고는 드나들 수 없었다.

섬과 비슷한 지형으로, 유배지로서는 적합한 장소인 동시에 고독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야기가 어려 있기 때문인지, 지금의 청령포는 그 수려한 절경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자리잡았으며 2008년에는 국가명승 제50호로 지정됐다.

청령포 내에는 단종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남아있다.




단종어소를 향해 마치 절을하듯 허리를 구부린 소나무

단종어가 사랑채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다

단종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종이 살았음을 말해주는유지비각(閣) 유지비는 영조의 친필이다.

옛 집터가 있었던 자리에 세운 단묘재본부유지비


천연기념물 제349호. 나무의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m이다. 지상 1.2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져 동서로 약간 비스듬히 자랐다.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각각 3.3m, 2.95m이며, 수관 폭은 동서 23.3m, 남북 20m이며, 수령 600년으로 추정된다. 한강 상류지역인 영월군 남면의 강 가운데 고립된 작은 섬의 소나무숲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 나무는 조선 초 단종(:1441∼57)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계산하였다고 한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소나무의 갈라진 사이에 걸터앉아서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렀다고 한다.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기록되어 있다.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 안에서 금표나 금송에 대한 채취 금지항목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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