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무섬마을 만죽재(晩竹齋)

浮石 2018. 7. 13. 06:00

 

 

만죽재 고택 : 경북민속자료 제93호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 만죽재(晩竹齎)반남 박 씨의 종가로 박수(1641∼1699)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을 때 지어진 집이다.

기와에 ‘1666년 8월 19일 김종일이 만들다’라는 글이 남아있다.

박수는 부인(夫人)인 창녕성씨(昌寧成氏)와의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본디 성품이 어질고 글을 잘 지었으며, 듣기를 즐겨하고 강개하여 큰 뜻을 지녔다. 

 

 

 

 

만죽재 현판 원본

 

박수의 선친인 환학암(喚鶴庵) 박경안(朴景顔)은 강 건너 머름마을에서 오랫동안 세거해 왔는데 무섬의 현 위치 반남박씨 만죽재고택에 처음으로 터전을 마련하고 가옥을 건축하여 차자인 박수에게 물려주었으므로 박수는 무섬마을의 입향조가 되었다. 만죽재 수리시 “康熙 五年 丙午 八月 十九日 平人 金宗一 造作(강희 5년 병오 8월 19일 평인 김종일 조작)”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어 지금의 만죽재 건물이 1666년(헌종 7)에 건립된 것이 확인되었다.
입향 당시부터 무섬은 섬계(剡溪)로 불려, 섬계초당(剡溪草堂)이라는 당호가 만죽재에 있었다는 구전이 있다. 박수는 현재의 주손인 박천세(朴天世)의 12대조이다. 박천세의 6대조 박제익은 섬계(剡溪)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현재의 당호인 만죽재는 박천세의 4대조 박승훈(朴勝勳)의 아호를 당호로 삼은 것이며, ‘만죽재’ 편액은 석운(石雲) 박기양(朴箕陽, 1856~1932)의 필적이다.
만죽재 박승훈은 조야의 선비들과 두루 교유하였으며, 유고집으로 『만죽재 일고』가 전한다. 박수는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박창은(朴昌殷, 1669~1742)이 선성김씨 김윤일(金允一)의 딸과 혼인하고, 딸도 선성김씨 김범석(金範錫)에게 출가하였다. 또한 박수의 증손서(曾孫壻)가 된 선성김씨(宣城金氏) 김대(金臺)는 영조 말엽에 무섬에 들어와 선성김씨의 입향조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양성이 함께 이곳에서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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