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창덕궁(비원 祕苑)

浮石 2024. 5. 1. 06:01

8년 만에 찾은 창덕궁(비원)

8년전보다 더 많은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보인다.

숙장문(肅章門)

숙장문은 성종 6년(1475)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을 성종이 낙점하여 그때부터 사용된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공사를 통해 재건되었다.

인정문(仁政門) (보물813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813호. 정전(正殿)에 이르는 출입문으로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 문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처음 창건된 것은 1405년(태종 5)으로 창덕궁의 창건 때 지어졌다.

낙선재(樂善齋)(보물:제1764호)

낙선재(樂善齋)와 석복헌(錫福軒)ㆍ수강재(壽康齋) 등으로 구성된 낙선재 일대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24대왕 헌종(1827~1849, 재위:1834~1848)대에 조선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후궁인 경빈 김씨와 대왕대비 순원왕후와도 관련이 깊은 공간이었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마지막 황비 순정효황후,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고종 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 등 황실의 마지막 여인들이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선정문(宣政門)

‘선정(宣政)’이라는 말에는 정치와 가르침을 널리 떨친다는 선양(宣揚)의 의미가 있다. 그대로 풀면 정치를 베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선정전은 창덕궁의 으뜸 편전으로 왕과 신하의 정무가 매일 벌어지는 곳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초기에는 이곳에서 작은 연회가 자주 베풀어졌는데, 특히 왕비가 주관하는 행사들이 치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세조 이전에는 특별한 이름을 갖추지 않고, 신하가 왕께 정무를 아뢰는 전각이라는 보편적 의미의 ‘조계청’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을 1461년(세조 7) 12월에 ‘선정전’이라는 액호를 내려 편액을 걸게 하였는데, 이때 선정문(宣政門)도 선정전의 의미와 동일하게 하여 정문의 이름으로 정하였을 것이라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