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痕跡

동복 적벽에서 편히 쉬다

浮石 2005. 10. 14. 00:46

 

 
동복 적벽에서 편히 쉬다
이제 여기에 적는 시는 그가 마지막 남긴 시다.
나이가 들어 몸이 노후해진 김삿갓은 전라남도 화순 동복 신석우라는 사람집에 머물게 된다.
몇일 몸을 쉰 삿갓이 어느날
[동복에는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적벽강(赤壁江) 과 똑같은 강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강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요?]
[적벽강은 여기서 삼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선생이 적벽강을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따뜻한 날을 택해 제가 직접 모시고 가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적벽강을 한 번 보고 싶어요. 그러나 나 혼자서 구경하고 싶지, 누구하고나 함께 보고 싶지는 않아요. 매우 외람된 부탁이지만, 내일 아침에 나에게 배를 한 척 빌려 주실 수 없으실까요?] 김삿갓의 고집으로 다음날 신석우는 어쩔 수 없이 김삿갓 혼자만 배를 타게 해 주었다.
배는 조그만 놀잇배였다.
물 위에 둥둥 떠도는 배는 노를 젓지 않아도 흐름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밥을 빌어먹기 위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고,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헤매고 돌아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아아, 여기가 바로 나의 안식처였구나!)
배 위에 편히 누워 저 멀리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하얀구름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자니, 눈꺼풀이 무겁게 감겨왔다. 이제는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에 겨울 정도로 기진맥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그렇게도 편안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기구하기 짝없는 50 평생이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鳥巢獸巢皆有居 (조소수소개유거)
顧我平生獨自傷 (고아평생독자상)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노라.

 

芒鞋竹杖路千里 (망혜죽장로천리)
水性雲心家中方 (수성운심가중방)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릿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尤人不可怨天難 (우인불가원천난)
歲暮悲懷餘寸腸 (세모비회여촌장).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노라.

 

初年有謂得樂地 (초년유위득요지)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강가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簪纓先世富貴門 (장영선세부귀문)
花柳長安名勝生 (화류장안명승생)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들 장안 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다.

 

隣人來賀弄璋 (린인래하롱장)
早晩歸期冠蓋場 (조만귀기관개장)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毛稍長命漸奇 (빈모초장명점기)
小劫殘門 海桑 (소겁잔문번해상)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소.

 

依無親戚世情薄 (의무친척베정박)
哭盡爺孃家事荒 (곡진야양가사황)

의지할 친적 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이 망했도다.

 

終南曉鐘一納履 (종남효종일납이)
風上異邦心細量 (풍상이방심세양)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心猶異域首丘孤 (심유이역수구고)
勢亦窮途觸藩羊 (세역궁도촉번양)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호 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南州從古過客多 (남주종고과객다)
轉蓬浮萍經幾霜 (전봉부평경기상)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부평초 처럼 떠돌아가기 몇 몇 해던고.

 

搖頭行勢豈本習 (요두행세기본습)  
口圖生性所長 (설구도생성소장)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此市失 (광음점향차시실)
三角靑山何渺茫 (삼각청산하묘망)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江山乞號慣千門 (강산걸호관천문)
風月行裝空一囊 (풍월행장공일낭)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는 행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家萬石君 (천금지가만석군)
厚薄家風均試嘗 (후박가풍균시상)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身窮每遇俗眠白 (신궁매우속면백)
歲去偏傷髮髮蒼 (세거편상발발창)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 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佇亦難 (귀혜역난저역난)
幾口彷徨中路傍 (기구방황중로방)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김삿갓은 여기까지 읊어보다가, 마침내 기운이 다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시를 읊을 기력조차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고, 김삿갓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살펴보며 수많은 시를 뿌려 놓던 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 동복 적벽강 범선 위에서 영구 귀천했으니, 때는 철종(哲宗) 14년(1863년) 3월 29일이요, 향년 56세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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