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고치령(마락재) 정상의 장승과 이정표

浮石 2005. 10. 27. 20:25

 

고치령(마락재) 정상의 장승과 이정표

고치령은 한때 소백산을 넘는 세가지 길 중 하나였다. 영남 선비들의 과거길로 ‘영남대로’라 불렸던 죽령 길과 영월 하동과 이어지는 마구령 길, 그리고 단양 영춘과 이어지는 고치령 길 등이었다. 세 길은 모두 백두대간 주능선 중 하나다. 백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태백산까지 흘러내린 백두대간은 소백산에서 꺾어진다. 대간은 마구령과 고치령을 거쳐 국망봉과 소백산 비로봉을 지나 죽령을 넘고 대야산, 속리산으로 뻗어간다.

고치령 정상(770m)은 그리 높지 않다. 정상에는 이정표만 하나 덜렁 꼽혀 있다. 정상에는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함께 모셨다는 성황당이 있었지만 이태 전 불에 타 없어져버렸다. (지금은 산신각을 새로 지었음, 든돌photo의 山神閣 참조)두 산신을 함께 모신 것은 바로 고치령이 태백산 줄기가 끝나고 소백산이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 영험한 곳으로 소문이 나 산아래 마을사람들의 지성도 대단했고, 타지에서도 무속인들이 많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바로 이 두 산신이 단종 임금과 금성대군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돼 영월에 유배됐을 당시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금성대군은 영주 순흥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다. 순흥과 영월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고치령 길. 마구령보다 고치령이 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성대군의 밀사들이 단종 복위를 꿈꾸며 고치령을 넘나들었을 법하다. 하지만 관노의 밀고로 복위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단종은 영월에서,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죽임을 당했다. 복위운동의 근거지였던 순흥도호부에서는 대학살이 이어졌다.

정상을 넘으면 마락리 마을이 나타난다. 계곡이 깊어 말이 떨어져 죽었다고 이런 이름이 붙은 곳인데 지난 태풍때 비 피해가 심했던지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마락리 마을에는 모두 12가구가 산다. 대부분이 노인들. 한때는 소백산을 넘는 지름길로 박가분을 파는 방물장수나 봇짐을 짊어진 보부상들이 들락거렸다지만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다


고치령

마구령 서쪽으로 역시 소백산국립공원 구역내에 위치한 고치령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마락리~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잇는 고갯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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