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충주중원탑

浮石 2007. 12. 9. 08:12

 


종     목 국보  제6호
명     칭 중원탑평리칠층석탑(中原塔坪里七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시     대 통일신라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충주시
설     명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섬약해져 있어 당시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다.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높이 14.5m로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 탑이다.

기단은 각부를 여러 개의 석재로 쌓았으며 상·하층 기단 모두 면석에 탱주() 4주()씩을 세웠다. 탑신부 역시 각부를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했으며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들었다. 상륜은 노반을 2중으로 만들었는데 그 위에 복발()·앙화()만이 남아 있다. 세부 수법에 있어서 약식()과 섬약한 경향이 보이며, 전체적인 형태도 높이에 비해 너비의 비례가 적어 지나치게 고준()한 느낌이다.

1917년 보수시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 장치가 나왔는데 6층 몸돌에서는 경감() 2매, 칠합() 1개, 은제사리병()과 그 안에 들었던 유리제 사리병 각 1개씩이 발견되었고, 기단에서는 청동제 유대합() 1개가 발견되었다. 그 중 경감은 고려시대의 거울로서 창건 이후 두 번째의 사리를 봉안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탑은 한국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하여 중앙탑이라고도 불리는데, 전설에는 785년경, 즉 신라 원성왕대에 세워진 것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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