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平,旌 이야기

''댐 건설 백지화'' 그 후 7년 동강 사람들은 지금…

浮石 2007. 7. 9. 19:40
“아직껏 배를 타고 다니는데 빨리 다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전엔 래프팅 보트가 동강을 뒤덮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죠.” “파랗게 투명한 물을 보기 어려워요. 어름치도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몇 년 전 여름철만 해도 강원도 동강과 영월은 몹시 어수선했다. 길거리마다 외지에서 온 대형버스와 승용차로 넘쳐났다. 동강에는 형형색색의 래프팅 보트가 수백m씩 줄지어 물살을 가르며 장관을 연출했다. 그러나 8일 찾은 영월은 영화 ‘라디오 스타’가 그려낸 것처럼 한가롭기만 했다. 7년여 전 동강댐(영월댐) 건설을 놓고 찬반으로 갈려 싸우면서 난 생채기도 아물어 가고 있었다.


#1. 개발행위 중단은 풀렸지만…



영월 읍내에서 정선군 군도 6호선을 따라 차로 한참을 위로 달려 도착한 정선군 가수리 가정마을 앞. 마침 학교 수업을 마친 종혁(8·정선초등 가수분교 2년)군이 이웃 이동남(42·여)씨와 함께 강을 건너 집에 가려는 중이었다.

평소 얕은 강 길로 바지를 걷어붙이고 건너는데, 엊그제 내린 로 배를 이용해야 했다.

이씨는 바위에 묶인 줄을 풀어 강 건너까지 연결된 밧줄에 단단히 걸었다. 이어 조그마한 배에 종혁이와 함께 올라타 줄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강을 건넜다. 건너편에는 종혁이 아버지가 걱정이 돼 나왔는지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원주환경청 자연환경과 김영(40)씨는 “2000년 6월5일 동강댐(영월댐) 백지화가 발표되기 전까지 개발행위가 일절 중단되다 보니 아직도 도로와 다리가 태부족하다”며 “가정마을에는 2가구 6식구가 살고 있어 다리를 놓아줘야 하는데 아직 못해주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인근 연포, 재장, 점재, 수동, 하매 마을 앞에는 댐 건설 백지화로 개발행위 제한이 풀리면서 2001년, 2002년 급하게 다리가 놓였다.

하지만 적은 예산 탓에 다리를 낮게 만들다 보니 연포와 하매 마을 앞 다리를 빼고 나머지는 조금만 비가 내려도 물에 잠기곤 한다.

또 댐 건설 예정지역 고시에서 풀렸다고는 하지만 2002년 8월 생태계보전지역으로 다시 묶여 주민이 개발을 마음대로 할 수만은 없다.

#2. 깨끗한 물은 지켜졌나

강 바닥이 훤히 보이는 동강의 맑은 물은 기대일 뿐이었다. 며칠 새 내린 비로 동강에는 황톳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장마철 으레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예전에는 황톳물이 내려오다가도 2, 3일만 지나면 금세 맑아졌다. 지금은 황톳물이 오래가고 1년 중 파랗게 투명한 물을 볼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가끔 녹조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냄새가 난다는 사람도 많다.

영월군 삼옥리 래프팅업소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는 오모(24)씨는 “보트를 타고 가면 전에는 강바닥이 보였는데, 지금은 탁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동강보존본부 김남광 사무국장도 “2000년 무렵만 하더라도 낚시로 잡히는 10마리 중 5마리가량이 어름치였는데 지금은 두세 마리”라며 “물속을 들여다보고 잡던 다슬기도 이젠 강바닥을 더듬어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동강 주변에 수질에 영향을 줄 정도로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동강에서 국내 최초로 시작됐다는 상업 래프팅 업체도 2001년을 절정으로 급감했다.

래프팅 마니아들이 강원도 인제 내린천과 한탄강 쪽으로 발길을 돌린 탓이다.

오염원은 동강 상류 도암댐에서 방류되는 오·탁수와 진부면과 횡계면에 산재한 고랭지 채소밭에서 비료·농약 성분이 섞여 흘러내리는 황톳물이 꼽힌다. 지방자치단체가 고랭지 채소밭 중심으로 황톳물 저감 대책을 세우는 반면 환경단체는 도암댐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3. 환경에 눈떠 가는 동강 주민들

2000년 댐 건설 백지화 발표는 동강 주민들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1991년 댐 건설 발표 이후 영월, 정선, 평창 3개군 562가구 2000여명이 재산권 행사 제한으로 진 빚만 150억원에 달했다. 당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동강댐 건설 백지화를 반대했다.

7년여가 흘러서인지 주민들도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2003년만 하더라도 매몰차게 내쫓겨 났는데 지금은 가면 아는 체를 해 준다”고 김영씨는 전했다. 그렇더라도 누구도 옛날 일을 꺼내려 하지 않는 모습에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들 인식도 이제는 동강을 잘 보존함으로써 관광객이 찾아오도록 하는 게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댐 건설 백지화 이후 초기에는 서둘러 도로를 놓고 포장하고 다리를 놓는 데에만 급급했다. 그렇다 보니 콘크리트 옹벽이 들어서고 비포장 자갈길이 사라져 동강만의 아름다움이 적잖이 훼손됐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변에 꽃길을 조성하고 강변 쓰레기를 치우며 옹벽 대신 자연친화적인 돌쌓기를 하고 있다.

댐 건설 백지화 반대 움직임이 가장 격렬했던 가수리의 이상균(37) 이장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보니 그랬지만 지금은 깨끗한 동강을 잘 활용해야 잘산다는 생각들로 바뀌었다”면서 “지원이 늘고 주민 소득이 높아지면 주민들 앙금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월·정선=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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